남미에서 장거리 버스를 탈 때 작은 보조가방을 놓는 올바른 방법을 다음 중 고르시오.

   

  1. 무릎 위에 올려 놓는다
  2. 다리 사이에 끼워서 바닥에 놓는다.
  3. 소풍 가는 초등학생처럼 앞사람 의자 뒤에 걸어 놓는다.
  4. 머리 위 선반에 놓는다.
  5. 가방 그런 거 업씀. -> 두 번째 단락부터 읽어주삼

       

    저는 보통 2번을 애용했어요. 1번은 가방이 무거울 경우에 너무 불편하고, 3번은 앞사람이 의자를 뒤로 젖혔을 때 불편하고 4번은 도난의 위험이 있으니 비추. 그런데 어제 에콰도르 키토에서 콜롬비아랑 접경 도시인 툴칸가는 길에 지금까지의 상식을 완전 바꾸는 사건이 있었어요,!!

       

    키토에서 툴칸 가는데 5시간 정도 걸려요. 버스 출발 5분 전에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버스 통로 중간쯤에서 어떤 아저씨가 저한테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거네요. 스탭인가? 하는 생각에 아저씨한테 가서 표를 보여주니 아저씨 앞자리에 앉으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가방을 다리 사이에 꼭 끼워 놓으라고 손수! 자리까지 잡아주는거죠. 어느 나라에나 있는 오지랍 넒은 아저씨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원래 가방을 그렇게 놓고 다녔으니까 좀 기분이 이상하긴 해도 그렇게 했지요.

       

    그렇게 가방을 놓고 mp3을 꺼내고 아이폰이 가방 안에 잘 있는걸 확인한 다음 노래 한 곡정도 들었을까요. 버스에 모기가 있는지 다리가 자꾸 가려워서 다리를 들어 여러 번 긁었어요. 그런데 뒤에 있는 아저씨가 제 가방을 발로 치는 느낌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움찔 했더니 아저씨가 파르동(실례합니다) 하더군요. 그리고서 노래 두 곡 정도 듣고 있는데 그 아저씨 (나한테 손짓했던 아저씨+ 그 아저씨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 둘이 나가데요.

       

    노래 듣다 질려서 아이폰을 꺼내려고 보니까 없어요.

    가방을 다 뒤져서 찾아보고 버스 바닦을 기어 다니다시피 돌아다녀도 없어요

    가방을 보니까 가방 옆구리를 누가 칼로 뜯은 듯이 찢어져 있고 아이폰은 없어요.

       

    아저씨 둘이 나가고 나서 5분도 안 된 순간, 아이폰이 있는걸 확인하고 10분만에 사라진거에요. 아저씨들이랑 같이.

       

    찬찬히 생각해 보니까 모든게 계획적이었던 거에요. 자기 앞자리에 앉으라고 한 것도, 가방을 바닦에 놓으라고 한 것도, 혹시나 제가 뒤를 돌아봐서 얼굴을 들킬까봐 의자 사이에 물병까지 놔뒀더군요. 버스를 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다리가 아무리 길어도 앞사람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긴 사람은 없어요. 제가 아저씨 발이라고 생각했던 건 가방 찢을 칼을 든 손이었던 거에요!! 아이폰을 가지자마자 차장 아저씨가 돈 걷으러 오기 전에 잽싸게 내린거죠. 아직 할부 끝날라면 1년 반이나 남은건데!

       

    그 인간들 덕분에 콜롬비아 가서 제일 먼저 할 일이 폴리스 리포트 만드는 게 됐네요 껄껄껄.

       

    거시기를 잡아 뜯어서 버릴 놈들 같으니

    가다가 차에 확 치어서 고자 돼라! 고자 돼라! 고자 돼라!!

       

    그 뒤로 3번을 애용한답니다.

    가방은 항상 내 눈 앞에,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남자친구보다 더 가깝게. I ♥ 가방.

       

    다시 한번

    고자 돼라!!!!



    불쌍한 내 가방..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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