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링
감독 크리스틴 까리에르 (2007 / 프랑스)
출연 마리나 포이스, 기욤 까네, 안네 브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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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0

 부활절 휴가에 소리나누미들과 급만남으로 보게 된 영화
처음에는 여성영화제를 하는 줄도 모르고 갔는데 알고보니 꽤 오래 되고 자리를 잡은 탄탄한 영화제라고 한다.
 레즈비언, 여성노동자 에 대한 주제 뿐만 아니라 구지 '여성'임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상관 없었지 싶을 정도로 사회적 소외계층의 얘기를 잘 다루고 있었다.

 영화제 관람은 처음인데, 아트레온의 3개 관에서만 열리는 영화제라 다른 관에서는 일반 상영작을 상영하고, 영화제 상영관에서는 관력작들을 상영하는 점이 참 특이했다. 여성 영화제가 열리는 분홍색 문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기분이랄까. 주최측에서도 그런 효과를 노렸는지 여성영화제 전용 엘리베이터와 도우미; 들을 곳곳에 배치하는 등 일반 관람객과 영화제 관람객을 구분시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으니 과연 11년간의 노하우가 쌓인 영화제다..싶었지



영화는 조조로 보기에 참 우울한 내용이었다 ㅠ

영화제 홈페이지에 나온 달링의 주제어는
괴물적 여성성, 가부장제, 자아성장 이라고 한다
(참조 링크; http://www.wffis.or.kr/wffis2009/program/pro_read.phpcode=126&round=11&section=&sang_no=902)

 프랑스 어느 외진 구석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사는 카뜨린은 부모님중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카뜨린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녀는 스스로의 사랑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빵집에서 일을 하기 위해 숫자와 글자를 배우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자기 모습을 만들어 가려는' 모습중에 하나였으리라.
 대부분의 시골 소녀들이 그렇듯이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지만 언젠가는 시골을 벋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그녀의 나레이션이 말 했듯이 그녀가 빵집에서 일하던 시간은 그녀의 인생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적어도 그 때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같고 있을 수 있었으니까.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을까
 트럭운전수를 만나서 도시로 나가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 남자가 문제였을까
아마도 둘 다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문제라고 할만한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냥 그렇게 되는거지, 아무것도 잘못 된 건 없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뜨린의 비참한 삶과 학대는 너무 덤덤하게 표현되서 측은해 하는 것이 과장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수 없이 학대를 당하는 데도 카메라는 한번도 그 상처를 가까히 보여주거나 맞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느낌'만으로 관객은 그녀의 고통을 느껴야만 했는데, 어쩜 그렇게 감정 이입이 잘 되는지 나조차도 신기할 정도였다.

 아마 괴물적 여성성

이라는 말의 의미는 내가 그녀를 보고 느꼈던 강인한 생명력에서 나온게 아닐까. 그녀는 신기하게도 아무 불평없이 그 수많은 학대들을 견딘다. 이미 애정은 사라지고 같이 있을 이유조차 없는데 그녀는 그저 그 상태를 남의 일을 보는 것처럼 방관한다. 저항할 기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저항할 이유가 없다는 듯이.

 아마도 현재 상태를 바꾸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지금 상황이 나쁘고 고통스러워도 정해진 틀 밖을 나가기 무서워하는 것. 그것이 내가 느낀 그녀의 여성성이었다. 물론, 이런 보수적인 성향에 여성성이라는 단어를 븥이는 것이 조금 어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주위의 대부분의 어머니들은(여자가 아니라 엄마다) 현재 상황을 묵묵히 견디는 데에 이골이 나신 분들이 아닌가.

 예전에 롯데마트에서 김치를 판 적이 있었다.
원래 20대 아가씨한테 시키는 일은 아닌데 그때 돈이 급했었고, 한번도 안해본 일이라 나는 내가 견딜 수 있을 줄 알고 덥썩 물었지만 결과는 정말 참담했다. 열흘의 근무기간중에 절반을 겨우 채우고 중도 하차했는데, 그 때 나와 같이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해주신 말을 생각해보면 그게 다 그녀들의 삶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일이 너무 힘들고,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들어서 참 많이 울었다. 손님들 앞에서는 울지도 못하고 구석에 있는 창고에 숨어서 울고 밥도 안먹으면서 열심히 울었는데, 울다 보니까 이런 일을 견디는 아주머니들이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이런 일을 견딜 수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지.

 우리는 이 일이 맨날 집에서 하는 일이니까 하는거지, 아줌마가 괜히 아줌마인줄 아나

그녀들에게는 우는 것도 어느 순간 사치가 되어 버린 듯 했다. 힘들어서 울고 있는 나를 달래다가도 손님이 오면 바로 물건을 파는 보습을 보면서 느낀건 '정말 대단하다.' 살면서 누구도 그렇게 대단해 보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괴물같았'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점심 저녁 쉬는시간 포함해서 3시간도 채 못쉬는데, 계속 말을 하고 물건을 나르고 담고 손님들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아니지 싶더라. 처녀이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대체 뭐가 그녀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까뜨린도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아줌마였고, 현실을 바꾸기보다는 거기에서 버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버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지라, 그래도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그녀를 판사 앞으로 끌고 간 것은 아이들.

 여자와 엄마는 분명 다르다.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불과 1년전인데, 김치 판매 알바를 하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더라. 지금 이 영화를 봐도 다시 느낀 것인데, 엄마가 된다는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엄마인 것이 아니라 엄마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딛고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1년 전에 나는 '아이에게 엄마는 신이고 안식처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되고 싶어요'라고 당돌하게 말을 했지만 지금은 감히 엄두가 안난다. 예전에는 아이에게 있어서 엄마의 역할을 생각했다면 지금은 엄마에게 있어서 아이의 역할을 생각한달까.

 아이가 엄마를 신이고 안식처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엄마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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