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는 빡빡했다. 제시카가 하는 일을 우리가 돕는 형식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도움이 없으면 제시가 혼자서는 일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입단하자마자 벤치멤버가 아니라 주전멤버로 발탁되는 선수의 부담감이 이것과 비슷할까? 인원이 적다고 얘기 적이 있는데, 생활하기에는 적당한 인원인지 몰라도 일을 하기에는 약간 모자랐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정해진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고작 5명이라고 하더라도 개의 조로 사람을 나누어야 했다.

 

, 안나, 요한 - 1

혜인, 디니     - 2

주는 1조가 아침 / 심야 일을 하고 2조가 점심을

둘째 주는 2조가 아침 / 심야, 1조가 점심을 맡았다.

나중에 가서는 하루가 아쉬워서 몫의 일이 아닌데도 일을 했던 경우도 있고, 해변의 상황이나 일의 진척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스케줄이 바뀌었다.

 

우리의 일과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기상 ; 아침 식사는 각자 알아서 먹는다. 아침조는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6 경에 숙소를 나선다. 아침조가 일을 하는 사이에 점심조는 늦잠을 자고, 간단한 청소를 하고, 점심을 준비한다.

 


아침 ; 숙소에서 걸어서 20 거리에 있는 해변, '부에나 비스타'로 간다. 부에나 비스타는 스페인어로 아름다운 경치 라는 뜻인데 끝도 없는 태평양을 향해 펼쳐져 있는 조용한 해변이다.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엄마 거북이가 사이에 낳은 알을 찾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 알을 놔두면 생존율이 낮고, 사람들이 가져가서 먹거나 팔아버리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알을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것이 아침 일과의 주된 목표다. 바다 거북은 멸종 위기 생물이기 때문에 알을 훔쳐가는 것은 명백한 절도 행위지만 식용으로 고가에 매입되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알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 우리는 도둑보다 먼저 알을 수거한 다음에 해변에 세워진 우리 '본부' 옮긴다.

 

본부는 쉽게 말하면 인큐베이터라고 있다. 아침에 발견한 거북이 알을 자연상태와 똑같이 40센티의 구멍에 넣은 다음 발견 날짜와 알의 개수를 적은 팻말을 꽂는다. 보통 45 이후에 부화 한다고 하니, 부화 예정일에 맞춰서 해당 둥지를 특별히 살펴 보아야 한다. 이렇게 팻말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보면 씨앗을 심어 놓은 밭과 같다.

 

한때 거북이 알이라고 불리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동그란 튜브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쭉쭉 빨아먹는 모양이었는데, 거북이 알은 기본적으로 생김새가 비슷하다. 다만 만질 때의 느낌은 냉장고에 넣고 30 정도 지난 아이스크림의 느낌이랄까. 거북이가 액체; 얇은 껍질이 감싸고 있다. 잘못해서 힘을 주면 껍질이 ! 들어가면서 액체가 흘러 나온다…ㅠ

 

(팻말에는 둥지 번호, 발견 날짜, 발견 시간, 알 갯수를 적는다)



성인 거북이는 번에 100 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 거북이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은 알을 낳을 수도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2 동안 일을 하면서 발견한 둥지 중에서 100개가 넘는 알을 가진 것은 보지 못했다. 제시카 말로는 산란된 알의 70% 부화하고, 부화한 새끼중의 0.1% 성인 거북이로 성장한다고 한다. 산란, 부화, 성장 모두 바다 거북이의 생애에 쉬운 일은 없다. 지금 내가 집어 올리고 있는 알이 성인으로 성장해서 다시 번식을 하게 가능성은 계산하기도 싫을 정도로 미약하다.

 

점심 식사 ; 아침조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점심조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는다. 대략 12시에서 1시 사이에 점심사가 끝난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돌아온 아침조 입장에서는 점심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완전! 서운하다.

(물론 이런걸 만들어 놓으면 안 되겠지. 정체불명의 음식. 결국 다 버렸다...)


점심
; 이제 점심조가 움직일 차례다. 아침조가 휴식을 취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점심조는 해변으로 간다. 점심조가 하는 일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거북이 둥지 청소. 알이 전부 부화하고 다음의 둥지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힘이 없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 미숙아들을 골라내어 인위적으로 바다로 내보내 주는 것이다. 나는 점심에 하는 일이 가장 싫었는데, 왜냐면 과정에서 죽은 거북이가 다량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거북이의 부화 원리는 단순하다. 힘이 놈만 살아 남는다. 40센티 두께의 모래를 뚫고 나와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거북이는 살아 남은 것이고, 바다로 가는 도중에 죽는 녀석, 부화는 했지만 모래를 뚫지 못한 녀석, 알이 손상돼서 부화도 못한 녀석, 부화는 했지만 기형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고스란히 모래 안에 남아 있다. 둥지를 청소하면서 가장 양호한 경우는 아예 부화도 못한 알을 찾았을 때다. 이건 그냥 집어서 올리면 되니까. 최악의 경우는 부화한 거북이의 '신체 부분' 발견하는 것이다. 머리만 발견했다면 이제 어딘가에 몸통이 남아 있다는 얘기인데...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토막난 거북이의 몸뚱이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채로 모래 속에 손을 집어 넣는 기분을.

 

(웃고는 있지만...)

부화에 실패한 거북이 유사물이 계속 둥지에 남아있다면 안에서 완전히 썩어서 분해 까지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들을 전부 청소해 주어야 한다. 유사물 뿐만 아니라 이전에 알이 부화할 같이 있던 흙까지 모두 버려야 하는데, 한번 부화할 썼던 흙은 박테리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알이 적응하기에 힘들기 때문이다. 청소는 간단하다. 퍼내고, 버린다. 하지만 박테리아가 있기 때문에 아무 데에나 묻으면 되고 ~멀리 떨어진 해변에 깊게 구멍을 다음에 묻어야 한다. 둥지를 청소하는 사람은 썩은 냄새를 맡으면서 거북이 시체를 집어 올리느라 힘들고, 쓰레기를 묻는 사람은 무거운 바가지를 들고 해변을 왔다 갔다 하느라 힘들다.

 

저녁식사 ; 음식을 만드는 팀이 점심, 저녁으로 달라서 메뉴가 겹치는 일이 없는 다행이다. 이것도 후반부로 수록 점점 귀찮아져서, 점심 저녁 모두 만들기 쉽고 설거지가 간편한 스파게티로 점점 통일되기는 했지만.

 


심야조
; 11시에 시작해서 새벽 2~3 까지 아침조가 했던 일을 반복한다. 매일 하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조가 사이에 낳은 알을 수거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심야조는 심야에 낳은 알을 바로 수거하는 일이다. 과정에서 알을 낳는 엄마 거북이를 직접 보는 경우도 있는데, 엄마 거북이의 건강이 심하게 좋다면 그대로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한다. 심야에는 제시카와 함께하지 않고 심야 일을 따로 담당하시는 분들과 같이 작업을 진행한다. 단순히 하는 일만 따지고 보면 아침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심야라는 제한 때문에 이분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숙소에서 해변으로 오고 때나 해변을 순찰 때에 트럭이나 ATV 타는데, 우리의 발이 되어 주셨다.

 

(왼쪽. 심야에도 새끼는 태어난다)

심야의 특이사항 ;

  • 거북이에게 일반 희색 빛의 랜턴을 쏘이면 거북이가 순간적으로 눈이 멀기 때문에 자칫하면 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랜턴에 빨간 색종이를 입혀서 붉은 빛이 나오게 했다.

  • ATV에는 운전자를 포함해서 4명이 있다. 운전자 뒤에 , ATV 바퀴 위에 각각 . 뒤에 사람은 괜찮지만 바퀴에 사람은 덜컹거릴 때마다 심장도 같이 덜컹거린다.

  • 해변이라고 하지만 기슭과 연결되기 때문에 육지에 사는 야행성 동물을 만날 있다. 악어라든지, 악어라든지, 악어라든지. 멀리서 빛나는 악어의 눈동자는 경이와 공포 자체였다.

  • 처음 심야조로 일을 나간 날은 붉은 달이 떴다. 시커먼 파도가 꿈틀거리는 수평선 위로 낮게 있는 달을 보면서 숨이 멎는 같았다. 무서웠던 것도, 아름다웠던 것도, 감동스러웠던 것도 아닌 이상한 기분.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붉은 달은 2시간 뒤에 구름에 완전히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어렸을 때는 문방구에서 파는 1000 짜리 야광 별자리 스티커가 유행 했었다. 별자리 중에 북두칠성 부터 헤라클레스 같은 꽤나 복잡한 별자리까지 스티커로 만들어서 팔았는데, 천장에 붙이고 불을 끄면 순간적으로 깜깜해진 안에서 진짜 별처럼 빛나는 야광 스티커였다. 해변의 밤하늘은 거대한 천장이었다. 어느 하나 빠진 하나 없이 완벽하게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별자리는 해변에 혼자만 남는다고 해도 외롭지 않을 정도로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화한
거북이를 바다에 돌려보내는 순간 감동이었다. 난생 처음 실제로 새끼 바다 거북이는 뜻밖에 귀여웠다. 아기들처럼 배꼽에 탯줄이 남아 있는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주제에 없이 바둥거리며 앞으로 가려고 한다. 아직 딱딱하지 않은 등껍질을 조심히 잡아서 들어 올리면 마치 하늘을 향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알은 보통 45일이 지나면 부화한다. 우리들은 부화 예정일이 다가오는 둥지를 세심히 관찰해서 새끼들이 부화 때마다 바다로 방생했다. 가능한 바다 가까이에 방생한다고 하더라도 새끼 거북이가 바다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힘이 없어서 신발 길이만큼의 해변을 기어가는데 번씩 쉬는 녀석도 있고, 어렵게 물살을 탔다고 해도 결국 엉뚱한 곳으로 밀려 나가기도 한다. 안쓰럽다고 해도 내가 손으로 집어 올려서 바다에 담가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힘이 약한 녀석은 죽고 테니까.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조그만 몸을 이끌고 태평양으로 헤엄치는 거북이의 모습은 자체로 편의 드라마였다.

 


일을 일찍 끝내면 제시카는 우리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자유시간을 수영시간으로 해석했다. 수영을 좋아하는 요한과 대양을 처음 보는 안나의 주도로 시작한 수영이지만 범벅인 나에게 철썩 대는 바다 소리는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결국에 며칠이 지나자 아예 속옷 대신에 수영복을 입고 다음에 일이 끝나면 바로 입수했다. 해변은 자연 보호구역이라 허락 받은 사람이 아니면 들어올 없는데, 덕분에 드넓은 해변을 우리가 전세 마냥 신나게 누볐다. 우리가 노는 재미있어 보였는지, 해안가 있는 별장 주인아저씨 분이 흔쾌히 서핑 보드를 빌려 주셔서 나중에는 서핑보드까지 제대로 갖추고 제시카가 나오라고 까지 하염없이 수영을 했다. 지금도 몸에 까맣게 자국이 남아 있는데, 자국을 마다 그때의 해변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주중! 에 하는 일들을 쭉 적어 보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 마지막편은 주말. 되시겠다. 커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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