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건 남미에 있는 어느 한국인 숙소에서 내가 들은 말이다.

내가 도장을 찍은 남미국가에서 나는 벌거숭이 같았다. 갑자기 겨울로 변한 계절과 낯선 말들, 광대한 대륙을 여행하는 데에 기본적인 루트를 어떻게 짜야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숙소를 찾았다. 간간히 한국인들이 많이 있는 숙소에 묵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인이 한국인이고, 오직 한국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숙소를 찾아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부러 한국인을 피한 것은 아닌데, 찾아 다닌 적도 없으니 여행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국적인'숙소에 몸을 맡기는 것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대략 이틀을 감기로 앓았다.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온 상태라, 감기가 걸리기 쉬웠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덜컥 감기에 걸리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한국어가 들리는 공간에서 아프다는 사실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틀을 내리 숙소에서 쉬었다. 압력밥솥에서 만든 쌀밥을 먹으니 약이 필요가 없더라. 날씨가 추워지니 몸도 덩달아 굼떠지는 같았고, 당분간은 그냥 그렇게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기가 낳고 나서도 나는 별로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겨울은 게을러지기 좋은 계절이니까. 스페인어나 공부하면서 설렁설렁 다녀야지. 봄방학을 보내는 초등학생처럼 느긋하고 편안하게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나에게 어느날 누가 말을 걸었다.

' 돌아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는 스타일인가봐요?'

''

'그럴꺼면 여행 왔어요?
'
........????!!'

 

그럴꺼면 여행 왔냐고?

 

순간 나는 얼어 붙었다.

도저히 질문의 요지를 찾겠더라. 이죽거리는 웃음(물론 눈에만 그렇게 보였겠지)으로 나에게 던진 질문에 나는 어설프게 대답 했던 같다. 이럴라고 여행 왔다 어쩔래! 라고 하지는 않았던 같고(그랬다면 지금까지 목소리가 마음에 남지도 않았겠지) 몸이 아파서 쉬고 있다 혹은 그럼 당신은 어떻게 여행 다니냐? 식의 대답을 했겠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사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욱씬거린다. 나는 행복하고 평화로웠는데,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휴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게으름이 되어 버리는 같았다. 여행 중의 기억을 하나만 지울 수만 있다면 때를 지우고 싶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여행자 vs. 군데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현지인인 하는 여행자. 세상의 모든 여행자는 크게 이렇게 부류로 나뉘는 같다. 그런데 기준은 굉장히 상대적이다. 누군가가 보기에 나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사람일 수도 있고 현지인인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한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여행 시기와 조건에 따라 가지 타입을 전부 넘나들고 있다. 사실 사람이 그렇지 않나, 자르듯이 자를 수도 없고. 그런데 중에 좋은 있나. 잘난 있나. 분홍색 빨대와 하늘색 빨대 중에서 예쁜 빨대를 고르라고 하는 것처럼 그건 사람 마음 아닌가.

 

그럴꺼면 여행 왔냐

 

물음 안에는

'너의 여행 방식은 잘못 되었다' 엄청난 생각이 숨어있다. 아니 사실 숨어 있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낸다. 급하게 화제를 바꿔서 이어진 대화의 요지는 ' 여행 해본 사람'이라는 자기과시였다.

 

그래서요?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당신이 여행을 많이 했는지 조금 했는지. 그리고 '여행을 사람' 입에서 한다는 말이 고작 다른 사람의 여행 스타일을 평가하고 폄하하는 것이라면 평생 여행을 하지 않을 거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사람의 여행 목적은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는 '이었던 같다. 그래서 나처럼 숙소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여행자는 자기 눈으로 보기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으로 보였겠지. 힘들고 길을 날아왔으니 많이 보고, 경험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그런데 말이지, 경험이라는 마추픽추를 보거나 우기의 우유니 사막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손해다. 감기약을 사러 약국에 갔을 스페인어로 약국이 파마씨아 라는 것을 아는 것도. 숙소를 어슬렁거리다 누가 두고 한국어 책을 봤을 , 마침 책이 내가 읽고 싶던 책이었을 때의 반가움도. 숙소에서 가에 있는 구멍가게에는 크로아상을 파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는 사실도. 나한테는 전부 여행에서 얻을 있는 즐거움이고 경험이다.

 

여행은 낯선 장소에 나를 던져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소에서만 느낄 있는 기분, 경험, 생각을 원하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표를 검색하고 가방을 싼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모두 각자의 여행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행을 인정하려는 마음 없이 자기 여행이 최고라고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여행을 무시하면 그건 불쾌하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남미를 다녀왔다고 자랑하고 있을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럴꺼면 여행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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