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연애사를 듣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 경험이 아주 특별한 것인 처럼 이야기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그런 평범한 연애이야기가 되기 쉽지만, 그렇기 때문에 연애 이야기는 가장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 거리가 된다. 여러 사람이 그만큼 감정이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눌 있는 주제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쿠바의 연인' 홍보를 하면서 집중적으로 부각한 소재가 '연애'. 한국 여자와 쿠바 남자의 연애담. 게다가 둘은 살이나 차이가 난다?! 어떻게 만났는지, 만나면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궁금해졌다. 게다가 쿠바. 신비의 나라의 모습도 조금이나마 보고 싶었다. 극장에 들어갈 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기대하던 것은 정도였다.

 

이렇게 앞에서 연막을 깔아 놓았으니 눈치 빠르신 분들은 짐작 하셨겠지만 영화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영화는 타인과의 간격과 그 사이를 바라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주인공이자 감독, 한국인이 '쿠바' 바라보는 이야기, 남자 주인공이자 쿠바인인 오리엘비스가 쿠바인의 시각으로 '한국' 바라보는 이야기가 영화의 핵심이며 제작 의도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라는 거추장스러운 이름을 적어 놓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뛰어넘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 그리고 만큼, 우리와 쿠바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한국에 쿠바 남자.

오리엘비스가 처음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장래의 부인-가족들을 만나는 장면은 조카들의 깨방정으로 시작된다. 꺄르르♥ 하면서 이리 숨고 저리 숨고 그러면서 보는 조카들은 생전 처음 폭탄머리 까만 피부 외국인을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다. 

반면 어른들의 반응은 어색 자체다. 아이들이 어색해 하면서도 호기심을 보이고 친해지고 싶어하는 반면에 어른들은 마디 통하지 않는 남자에게 한국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것으로 환영 인사를 대신한다. 한국말을 모르는 남자 주인공을 옆에 두고 한국어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는 모습은 아직 처남/매형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오리엘비스를 신기하게 쳐다보시던 할머니에게서 나온다. '도깨비의 형상을 사람이 나왔다. 세상이 종말 하려나 보다.' 말의 내용도 충분히 충격적이지만 말을 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서 반박할 틈조차 없었다.

한국에서 오리엘비스는 호기심의 대상이거나 낯선 존재일 뿐이다.

 

쿠바에 한국 여자.

고작 쿠바에 2 밖에 있지 않았던 나는 쿠바에 한국인 2, 3세가 이렇게 많이 사는 알지 못했다. 6.25전쟁이 끝난 후에 고국인 북한으로도, 적국인 남한으로도 가지 못했던 포로들 대다수는 중립국을 택했다. 지금 쿠바에 있는 한국인 2, 3세는 옛날 달이 걸렸을 항해 끝에 쿠바에 터전을 잡은 사람들의 후예다.

외모를 제외하면 언어와 생활방식 모두가 완전한 쿠바사람인 그들의 말에 따르면, 지구상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에 하나일 나라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답답한 행정 절차도, 배급제로 시행되는 식료품 정책도 아닌 자유의 억압이라고 한다. 인간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항상 변화하는 존재인데 쿠바에 사는 자신들만은 오래된 영화 필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정체되어 고여 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변화를 기본 속성으로 하는 혁명의 결과가 정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한국에서만 20 년을 살아온 내가 갑자기 아마존에 가서 산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방식을 습득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것이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고, 이상해 보이는 것이 당연해지는 상황. 오리엘비스가 한국에서 겪는 일들이 그와 같다. 그는 자본주의 소비가 무한정 가능하다는 것에 놀란다.

 

돈으로 물건을 무한정 있는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욕심 없는 삶이 가능하다. 부자가 있을 수도 없지만 부자가 된다고 해도 누릴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 기껏해야 콜라를 마시고 정품 시가를 태우는 정도겠지. 폐쇄적인 경제라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소비와 기대치를 한정 짓는 것이다. 모두 똑같은 것이고, 극단적인 가난함이나 부유함은 허락하지 않는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현재를 즐기는 데에 집중한다. 그대로 까르페 디엠.

 

오리엘비스의 솔직한 얘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게으르다거나 문란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사고방식이 체제 안에서 보통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간격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마지막에는 관객을 설득시킨 것을 보면 영화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지 바라는 점을 말해보자면, 내용이 너무 짧다! 한국인이 어떻게 쿠바에 있는지, 쿠바인이 어떻게 한국에서 있는지도 궁금하고 오리엘비스가 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 같은 것도 너무너무 궁금하다. 나는 커플의 사는 이야기가 '인간극장' 같은 곳에서 25부작으로 다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타인과의 간격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종말의 징조'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쿠바의 연인'예고편. - 맨 처음에 나오는 버스 기사 아저씨 짱 웃기다 ㅋ 나이트 클럽보다 더 신나는 쿠바 버스가 생각난다>


<뉴스데이트에 나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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