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가보지 않은 산티아고가 그립다. 


지난 여행 사진을 보다가 문득

다음 장으로 사진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모니터에 떠 있는 사진을 점자를 만지듯이 손끝으로 천천히 만져봤다.


그 때의 기억이 점점 생생해 질 수록, 그 날로부터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도


물론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그 장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똑같은 것을 느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그 때의 기억과 마주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기억을 잊고 싶은 것과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그래도 나는 그때의 고독이, 낯섦이, 낯선 나라의 슈퍼마켓이, 무거운 가방이, 항상 숨기고 다니던 여권이, 거친 피부가, 값싼 숙소의 곰팡이 냄새가, 침대 위 얼룩이, 쉴새없이 다가오던 호객꾼들이, 집에 가고 싶어 주저앉던 그 바닥이 전부 다. 


그립고 또 그리워서.

그 언젠가 꿈속에라도 나와주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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