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출발.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몰아 닥친 목요일. 아픈 허리와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과 자기 의견만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목소리를 한참을 듣고 나서야. 
나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떠나야만 한다. 그것이 예정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가고 싶은가, 그리고 마땅히 가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은 그 다음의 것이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맡기는 일은 더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동행인 엄마 - 처음으로 패키지가 아닌 여행을 떠나는 - 를 불안하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임무였지만 나는 그 임무를 수행할 의지가 없었다. 
의지는 없어도 몸에 배어 있는 순서에 따라 해외여행에 응당 따르는 절차들을 완수하고 나서 -체크인, 해외 로밍 - 한 숨을 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울컥 울어버렸다. 
입에서는 어린 짐승같은 소리가 나오고 고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머리 끝까지 핏줄이 설 정도로 한참을 울었다. 어느새 내 손등은 엄마 손 위에 포개져 있었고 떨리던 무릎에는 작은 손수건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딱히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직전의 통화 때문인지, 아니면 울먹거리던 선배의 목소리 때문인지. 
그래도 다행인건 나 혼자 울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도 나를 항상 지지해주는 사람이 내 옆에 있었고,
내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이 있었고, 내 손을 잡아줄 거칠지만 뜨거운 손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면세 구역으로 들어가서, 출발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그게 전혀 넉넉한 시간이 아닌 것을 익히 경험하여 알기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예정된 면세품을 사고 그 와중에 공항까지 짐만 들어주고 밥도 먹지 못하고 간 동생에게 줄 선물을 사고 
그리고 게이트 앞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내가 여행을 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떠난다. 
이 모든 것들로 부터.

0-1. 막탄 공항. 
새벽에 도착한 공항은 작은 분주함만 있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비좁은 공간에서 4시간 동안 같이 한 사람들이 이제 각자의 목적지로 발길을 돌린다. 다소 졸린듯한 몸동작들.
대부분이 가족 단위 여행객이었다. 우리 모녀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 네 명은 엄마와, 다 큰 딸 둘과 그 딸이 낳은 아기 하나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른도 불편했을 여행 내내 착하게 자고 있던 아기는 이제 막 23개월째라고 했다. 여자들끼리만 오는 여행에는 어딘지 모를 도란도란함이 있다. 
후텁지근한 공항날씨에 맞추어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리조트 드라이버를 찾기로 했다. 
그는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문득, 이들은 여행객이 예정에 없이 비행을 취소하면 어떻게 할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 관계없나. 이미 나는 계산을 완료했으니.


간단하게 여행 정보 하나. 
막탄 공항 세관에서는 면세점 봉투를 들고 있는 여행객들을 불러다가 세금을 내라고 한다. 
어리둥절한 나한테 가리키는 벽보는 친절하게도 한국어로 
'필리핀에서는 그것이 자국에서 수출되었던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들어오는 물건에 대해서 소정의 세금을 부과합니다'
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안내에 따라 간 작은 방에서는 공항 직원이 "40달러? 싫어? 그럼 20달러만 줘"
하는 식으로 면세품을 든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있었다. 
말을 하는 품새가 정해진 금액이 없는 느낌이다. 
내 갈음으로 10달러를 주니 방 입구에 있는 작은 나무 상자에 돈을 넣는다. 
그래 돈 많은 한국인을 위한 특별 세금이구나. 다음에는 면세품을 가방에 넣어 보이지 않게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2. 바디안으로 가는 길
공항을 나오니 새벽 3시 정도였다. 숙소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었나. 
불편하게 도착한 세부였지만 낯선 나라에 도착한 긴장감 때문에 편한 자동차에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 날은 부활절이 전의 목요일이었다. 
새벽 5시 정도 되니 가는 길 마다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다. 
예수가 부활한 날을 기념하여 새벽 미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비몽사몽한 속에서 마을을 지나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나는 잠이 들고, 어느덧 다 와 가는 느낌이 들더니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작은 마을의 선착장이었다. 
드라이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기다리고 있는 작은 배로 올라탔다. 
아무 생각없이 몸만 이동하면 되는 편한 여정이었다. 


배가 향하는 곳에서 해가 뜨고 있었다.



*여행 비용*

1. 항공권 ; 인천공항(ICN) -> 세부 막탄 공항(CEB) ; 42만원 + 80만원 

이 둘의 차이는 예매 일자의 차이. 42만원은 한달 전, 80만원은 일주일 전에 예약

2. 숙소 ; badia islan resort&spa family suit promotion

1박 $209 * 3박 = $618

3. 교통

- airport pick-up 편도 $60 <- 사실상 픽업 이외에는 갈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공항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기 가서 도착하는 방법이 있는데 리조트에 가는 관광객 중에 이 방법을 이용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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