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지킬과 하이드. 똑같은 감동,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 

1.
2009년에 처음으로 지킬과 하이드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난 여전히 루시가 궁금하다. 

이번 루시 역은 리사였는데, 지난번에는 소냐였지.
처음으로 본 루시가 소냐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말 그대로 소내가 잘 하기 때문인지 루시의 노래는 100%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더 높은 음으로 올릴 수 있는데 일부러 안정적으로 부르기 위해 벽을 치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렇게 절제해서 불렀기 때문에 대사 전달이 잘 됐을 수도 있고, 감정 표현이 잘 되었을 수도 있고 표정 연기가 잘 되었을 수도 있지만.
루시는 노래 부르고 춤 출때만 자기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불꽃같은 여인인데, 리사는 불꽃보다는 그냥 지킬의 두번째 여자 느낌이랄까. 
그래도 이쁘면 장땡이다.

2. 
원래 재공연을 하면 이전에 공연했을 때와 무대, 대사가 다 똑같은건가?
왜 나는 이전보다 못한 것 같지..
1) 
지킬이 하이드로 처음 변신했을 때 우르르쾅쾅 번개치는 소리가 나면서 하이드의 드림자가 객석 3층까지 엄청나게 커 지는 연출
은 2009년에는 있었는데..왜 때문에 2015년에는 없어진걸까?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야. 
2) 
하이드의 첫번째 희생양인 변태 주교는 2009년에는 그냥 미친 변태 기름끼있는 호색한이었는데(이리와봐 우리 그오오양이 으흐흐흨) 2015년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가 방금까지 깔고 있었던 어린애한테까지 변태짓을 강요하는 싸이코 변태가 되어 버렸다.(안녕, 우리 고양이? 야옹 한번 해볼래? 난 멍멍 할테니까 우리 술래잡기 한번 해볼까? 멍멍!멍멍!)
구지 따지자면 호색한이 죽을때가 더 통쾌했다. 

3.
맨 마지막 커튼콜 장면이 잊혀지질 않는데. 2,000원 주고 빌린 오페라 글라스가 고마울 지경. 
객석에는 과반수의 관객들이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치고 있고, 다른 배우들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 걸어나오기 직전에 지킬은 짧기만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미소지으며 걸어온다. 심호흡, 미소. 그 짧은 심호흡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을지 너무 궁금하다. 
오늘도 무사히? 역시 힘들다? 배고프다? 끝나고 뭐먹지? 끝까지 잘 해야하는데? 등등

4. 
지킬이 인사를 하고 나서 모든 배우들이 퇴장하고 지킬은 하이드로 변신할 준비를 한다. 머리를 풀어 헤친다. 하얀 블라우스의 단추를 뜯으면서 한 번에 열어 젖힌다. 그리고 무대 오른쪽으로 두 발 크게 뛴다. 마지막으로 허공을 향해 점프하며 주먹을 올린다.
우와...그 전까지 계속 루시만 바라보다가 첨으로 하이드에 눈이 갔다. 역시 주인공은 괜히 주인공이 아니구나. 
개털 코드 입었다고 놀렸던거 정말 미안...

5. 
'지킬과 하이드' 왠지 조승우 주연으로 봐야만 할 것 같은 왠지 모를 압박이 있는데, 이건 마케팅의 효과 같다. 
경험상 기대하고나서 실망하는 것보다는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더 좋아한다. 
그래도 다음번에는 조승우가 주연인 뮤지컬을 한 번쯤 보고 싶다. 딕션이 그렇게 정확하다는데, 짱궁금.

6. 
오페라글라스는 들고 있으면 팔도 아프고, 눈에 댈 때마다 다시 초점을 맞춰야 하고, 오래 보고 있으면 멀미가 나는 단점이 있지만. 
등장인물들이 정면을 보고 노래를 부를 때 마치 나를 보고 불러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1층이라 누릴 수 있는 장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연기할 때 나도 모르게 같이 긴잔된다는 점...(내가 왜? 난 관객인데 내가 왜 긴장되고 힘빠지지?)
공연을 다 보고나서 지쳤던건 긴 공연시간에 오페라 글라스의 멀미 뿐만 아니라 이 긴장감도 한 몫 한 것 같다. 
어쩐지 시원한 박카스가 먹고 싶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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