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칭 포 슈가맨 (2012)

Searching for Sugar Man 
9.2
감독
말릭 벤젤룰
출연
말릭 벤젤룰, 로드리게즈
정보
다큐멘터리 | 스웨덴 | 86 분 | 2012-10-11




양양에서 서울로 오는 길이었다. 일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고속버스안은 만원이었고 4시간이 걸릴 여행길에 수면제가 필요해서 맥주를 미리 한 캔 마셨던 참이었다. 몽롱한 정신에 고속버스에서 깨고 나서도 아직 2시간이나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아 맞다. 나에게는 6개월 전에 다운 받아놓은 영화가 있었지. 최상의 타이밍을 찾지 못해서 태블릿 안에 메모리만 차지하고 있던 이 영화를 빨리 해치워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책은 오래 못읽는다. 잠도 다 깨버렸고. 그렇게 영화 재생 버튼을 눌렀다. 

누군가를 우상처럼 숭배하고 갈망한 적이 있나
모니카벨루치가 나한테 그런 사람이었다. 중학교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2000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TV에서 방영해준 적이 있었다. (EBS만세!)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유명한, 정원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말리는 말레나의 모습은 영원히 박제로 만들어서 훔쳐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https://youtu.be/1FcOsQqAk28  2' 30") 그렇게 모니카 벨루치를 처음 알게되고 그 배우가 나오는 모든 작품을 복습/예습/반복 학습하며 내 숭배심을 보였었지. 그녀의 연인 벵상 카셀과의 만남, 딸의 탄생, 연인과의 이별을 모두 보고 나서도 모니카벨루치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식지 않았지만, 인터넷 뉴스에 뜬 기사 이상으로 그녀를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내가 모니카벨루치의 옆집에 살거나, 아주 먼 친척이거나 혹은 아주 많은 인연의 다리를 건너서 모니카벨루치가 어제 먹은 점심메뉴를 알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해도 난 귀를 틀어막을꺼다. 우상은 우상일 때 아름다울 수 있다. 실망하게 될까봐 두렵고, 그동안의 내 숭배심이 허무한 일이 되어 버릴까봐 겁이 났다. 왜, 그런지 있지 않나. 같은 학교 동아리에 멋진 선배가 하나 있는데, 그와 친해지는 건 다른 의미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나 내 상상 속의 이미지가 가장 아름다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우상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면 그 여행이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우상의 비참한 모습을 알게 되어 괴롭지는 않을까? 계속 모르는채로 있고 싶지는 않을까? 우상에게 다가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 스포 주의 ————

서칭포 슈가맨은 그 용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의문의 가수, 두 장의 앨범만 남기고 공연도, 기사도 없이 다만 이름과 사진 몇 장만 남아있는 가수를 찾는 이야기. 
그를 찾는다는 공통점 외에는 사는 나라도, 직업도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해피엔딩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남아공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불씨를 당긴 로드리게스는 자신을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변했지만 정작 자신은 여전히 힘들고 고된 육체노동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유명세에 휩쓸려 새 앨범을 발표하기보다는 ‘더 잘 만들 자신이 없는’앨범은 내버려두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 앨범만을 세상에 남겼다.

그리고 계속되는 삶.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말하자면’그의 삶은 노숙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난한 환경, 수없이 많은 이사, 굳은 살이 없어지지 않을 그 인생에서 그에게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가난하게 살지만 비참하지 않았고,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며 교양과 지식을 축척시키려 노력하고 세상을 바꾸려고 시의원 선거에 수 없이 출마한다. 그런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오직 그 안에서만 이루어질 뿐이다. 만약 그가 낸 앨범이 미국에서 성공했다면 그가 계속 그 삶을 영위할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그처럼 긍지 높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지어지는 것을 내버려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 삶은 스스로 이꾸려 가는 밭과 같아서 모진 풍랑과 따스한 햇살이 그의 밭을 뒤흔들어도 거기에 어떤 씨를 뿌릴지는 농부의 선택에 따른다.

누가 내 삶을 선택하게 내버러 두지 말아야 겠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모두 내 선택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로드리게스가 미친듯이 부러웠다. 

1.
아이들을 박물과, 미술관에 데려갈 수 있는건 미국의 높은 복지 문화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된 노동을 마치고 자녀들을 그곳에 데려가는 건 물론 쉬운 선택이 아니겠지. 부러워라 대단한 사람아.

2. 
노래가 정말 좋았다. 듣는 순간 안개낀 부둣가에 있는 음습한 카페에 앉은 느낌. 
로드리게스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어둑한 항구도시. 저 멀리서는 떠나는 화물선 뱃고동이 들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바에는 싸구려 술병이 나뒹군다. 바깥보다 더 어둑한 가게 안은 담배 연기로 앞사람 머리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린 가운데 기타와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아주 작고 가난한 공연장
그곳은 완벽한 무대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