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국내도서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공경희역
출판 : 은행나무 200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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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에 관해서 깊은 통찰력을 갖고 논하는 철학자 수준으로 추앙을 받는다. 
분명 나도 잘 몰랐던 감정들에 대해 정확하게 짚(었다고 여겨지)는 그의 말솜씨는 놀랍다. 
이 책의 원문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책을 번역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혹은 해왔던)연애를 통해서 느꼈던 감정들을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감정을 알고 나면 멍청하게도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 테고, 나는 사랑 속에서(혹은 사랑을 하지 않음에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지금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다만 앨리스가 에릭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에는 아주 많이 공감이 갔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인데, 왜 같이 있으면 외로워질 수 있는걸까.
사람을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아니면 그냥 연애 그 자체가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걸까.
같이 있어서 외로워 진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걸까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다는건 대체 뭘까

p.s. 사랑이야기 보다는 독서와 여행에 관한 그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 앨리스는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 남자의 행동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에릭은 처음 만난 날과 똑같이 복잡해 보였다. 그 첫 만남에서 그녀는 그 남자를 '안'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멀리서는 잘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백만 개나 되는 파편으로 나뉘어 있었다. 앨리스는 이토록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요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없고, 끊임없이 질문과 해석이 뒤따르는 불안정 상태에 힘이 빠졌다. 

->에잉. 마지막 문장에서 '힘이' 라는 말이 없이 불안정 상태에 빠졌다. 로만 끝났다면, 아, 이 여자는 지금 사랑에 빠졌군. 이라고 생각했을껀데.

1. 
1) 앨리스는 에릭을 사랑했다. 
2) 그 남자는 그녀를 초대하지 않아, 그녀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했다. 
3) 하지만 실제로 합당하게 불평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는 증오와 실망을 표현하지 못하고
4) 그녀는 조용히 에릭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5) 그녀는 그 남자를 비난하는 자신을 참을 수 없어서 자신을 미워하면서 침대로 갔다.

2.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히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는 사람이 권력을 행사한다. 
스탕달은, 애인 사이에서는 언제나 한쪽이 상대방을 더 사랑하며, 그래서 두 사람 관계의 권력이 인지되기 마련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양쪽이 저울의 수평을 유지할 때에만, 한쪽이 "사랑해요"락 말하면 상대도 자연스럽게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에만, 권력의 존재를 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미세한 차이만 벌어져도 권력은 재등장 신호를 보낸다. 
앨리스가 여섯살이었을 때 옆집에 활발하고 장난기 많은 동갑내기 여자 아이가 살았다. 어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둘은 어느 토요일 오후, 흥미진진한 계획을 감행하기로 했다. 말하자면 길 건너편의 부잣집 정원에 뛰어들어, 바지를 내리고 혀를 내밀고는 다시 뛰어오는 일이었다. 많은 생각과 준비 끝에 약속한 시간이 외었고, 두 아이는 낮은 나무 울타리를 뛰어넘어, 잘 가꾸어진 잔디밭으로 들어갔다. 
앨리스는 바지를 내린 순간, 친구가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아이는 정원의 맞은편으로 달아나서, 바지를 멀쩡히 입은 채, 가여운 앨리스를 보며 키득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앨리스는 모르는 사람의 정원 가운데서 혼자 바지를 내리고 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끼리 예절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선 관계라면, 누군가 이웃집 정원으로 들어가서 거기 있는 위험을 끌어안아야 한다. 자신의 말을 권력의 저울에 올려놓고,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이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책임을 따지기는 어렵다. 그가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커피 마실 시간이 없군요"라거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지만, 전 결혼 생각이 없어요"라고 대답한다면, 관심이 없나보다 하고 양해해야 할 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3. 
하지만 그녀는 그런 점 때문에 사랑받는 것 역시 원치 않았다. 두통이 나거나 기분이 나쁘면 머리로 하는 일은 곧바로 엉망이 될 수 있었다. 앨리스는 두뇌의 능력이라는 것이 실은 본모습과는 무관한 정신의 곡예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두뇌는 더 나누어서 봐야 할 것이었다. 지성과 그 밖에 다른 것, 가장 나중에 남아 더 파악하기 어렵고 말랑말랑한 것으로 

4. 
책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처럼 직접 말을 걸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말을 걸어주는’듯한 책에 익숙하다. 저자는 우리가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보는 상황을 말로 설명한다. 서로 통하는 점을 발견하고 기쁨에 떠는 연인들처럼, 독자는 책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서 외친다. ‘세상에, 나랑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네! 나 혼자만 ……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어두워지는 교외의 덜컹덜컹 달리는 통근 열차나 밤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독자는 짧은 순간 고독감을 덜 것이다. 자기보다 큰 존재, 인간애와 연결됨을 실감하고, 전에는 타인으로 치부했던 동료 승객과 다른 모든 이들을 향한 이해와 공감이 갑자기 밀려들 것이다. 자신과 타인들 간의 공통점이 차이점을 능가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양될 것이다.

5. 
하지만 앨리스는 매주 몇 시간씩 겨우 책 읽을 짬을 낼 수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관심사와 관계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자기의 물질적, 사회적 환경과 꼭 맞아서 상황과 설명을 그대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책을 원했다. 그녀는 ‘딱 들어맞는’ 책을 찾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그녀가 여태 느끼면서도 정리할 수 없었던 것들을 콕 집어내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자신의 경험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설명을 찾았다. 
그녀는 ‘나를 찾고’싶었다. 자기 이야기여야 했고, 복잡하고 설령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런 야심이 담겨 있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어떤 것을 느끼는지, 왜 사랑하는지, 왜 미워하는지, 왜 좌절하는지, 왜 행복한지 더 잘 알고 싶었다. 

6. 
여행은 흥미롭게도 지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인 활동으로 읽을 수 있다. 
왜 실제 여행 경험은 그토록 기대와 다른지, 섬과 호텔이 훌륭함에도 왜 계속 혼란스러운지 의아한 까닭은, 그녀가 짐을 꾸릴 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두고 오는 걸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탠로션이며 자기계발 책, 비키니 수영복과 선글라스를 싸면서, 자기 자신까지 챙겨왔기 때문이었다.
몽테뉴는 수상록의 ‘고독에 관해’란 부분에서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어떤 사람이 여행을 하고도 전혀 성숙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발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데려갔거든요.’’ 같은 글에서 호라티우스는 물었다.
왜 우리는 찾아다니나,
다른 나라와 기후를?
어떤 추방자가 자신을 뒤에 남기고 떠날까?

7.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있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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