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믹스에서 우연히 알게 된 철학모임 (젊은 철학자들의 야한생각 http://onoffmix.com/event/56941)에서 작성한 나의 '꿈'에 대한 키워드다. 

작성한 꿈에 대해서 해결중심 상담기법(!)을 이용하여 작성한 꿈에 대해 짝을 맞춰 1:1로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대방의 꿈에 관한 질문을 하는 건데 '왜 이걸 꿈으로 설정했어요?''이 키워드는 무슨 의미에요?' 등등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내 꿈을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 

대화를 하던 중에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내 꿈을 이루는 방법으로 수녀가 되는(종교에 귀의) 것도 방법이라고.

오호라?

올해 여름까지만 해도 누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현모양처'라고 대답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었거든. 현모양처가 내 꿈이 된지는 꽤 오래 된 것 같다. 현모양처 이전의 꿈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는데 나의 세상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 한정지어 재정의한 것이 이 '현모양처'다. 

최근에는 몇 가지 이유로 꿈을 재정의할 필요성을 느꼈다.
첫번째, 당연한 말이지만 형모양처는 특수한 관계 사이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남편과 아내 /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인데, 이 관계를 성립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나는 애시당초 현모양처를 꿈으로 설정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거다. 내가 현모양처를 꿈으로 설정한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조건(결혼)이 필요하다면 목적에 위배되는게 아닐까

두 번째,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말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나를 세우고 가정을 만들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위에 선다는 뜻이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예전에 꿈으로 삼았던 세상 -> 가정 으로 대상을 바꾼 다음 꿈을 설정한 거다. 세상은 내가 바꾸는 것, 가정은 내가 지키는 것. 그런데 이 말의 가장 처음에 있는 '수신'을 내가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부터 먼저 챙겨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너무 소홀히 대하는건 아닐까?

그래서 내 꿈은 '정서적 평화'로 임시로 정했다. 약간 벙벙한 의미로 보일 수 있는데, 희안하게도 그날 워크샵에서 대화한 4명의 사람들이 다 단어보다는 어떤 상태나 문장으로 꿈을 설정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일은 한다. 혹은,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하루를 산다. 처럼. 

1:! 질문을 통해 꿈을 구체화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정서적 평화는

1) 내가 올바를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태
2) 관계 없이 혼자 있을 때의 내가 안정적인 상태
3) 만약 올바르지 않은 관계에 있다면 그걸 그만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상태

를 의미했다. 당일치기로 만든거라 아직도 애매한건 사실이다. 사실 정서적으로 안정되는건 혼자 있을때가 최고 아닌가.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인데 나는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이전 연애를 돌이켜 봤을때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남자가 내 배우자라면 어떡하지? 그런 경우에는 3)처럼 과감하게 그를 잘라버려야 할텐데.

고통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는 가장 흔한 말로, 고통이 지나면 더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만든 이를 존경하지만, 고통의 후유증으로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들도 수 없이 많이 봐왔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정서적 평화는 이런 고통을 전부 다 겪은 후에도 내가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이 아닐까.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꿈으로 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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