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최근 한국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다 찌질할까. 공유는 딸내미 생일에 뭘 줬는지도 기억도 못하면서 바득바득 양육권을 우기는 아빠고 마동석은 자기 와이프 안위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막말을 일삼는다.


오히려 그 중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천리마 고속 상무다.

상무는 지 살겠다고 좀비들 있는 곳으로 승무원을 밀어 버릴 정도로 인간 말종의 모습을 보여 주더니, 좀비가 되고 난 뒤에는 갑자기 아동으로 퇴행 해 버린다. 극 중에서 가장 대중을 휘어잡는 리더십을 보여주던 상무가 좀비가 되고 난 뒤에 읊조린 말들은 그가 얼마나 성숙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아저씨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 있는데로 데려가 주세요 우리집 주소는 부산시 수영구...

좀비가 있는 칸을 떼어 버리고 부산으로 가달라고 바득바득 우기던 이유가 무의식중에 있는 고향의 기억때문이라면 난 그를 경멸하기보단 동정하려 한다.

나도 좀비로 가득찬 열차에서는 남보다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우선할 이기적인 사람이고, 영화에 나온 인간군상들이 특별히 나쁘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다. 


다만 영화가 끝나고서 더 짚어지는 질문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도덕성 같은 건 대체 우선순위의 어디 쯤에 나열되어 있는 것일까. 너나할것 없이 노약자와 여성을 먼저 배려하는 주변 인물들은 영화적인 연출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노약자와 여성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문화 때문일까. 실제로 저 상황이면 보호자를 잃은 임산부와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재난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