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10주간의 컨설팅회사 인턴이 끝났네요 보통의 RA라고 하지만 제가 한 업무는 완전히 그쪽은 아닌거 같아요
처음에는 SK상생인턴이랑 엮어서 간거라 상생인턴 후기도 같이 올렸었지만, 다시 생각하는 시점에서 아무래도 의미가 컸던건 업무쪽이겠지요
이전부터 계속 생각해왔던 진로였던 만큼 하루하루 출근하면서도 '일한다'가 아니라 '배운다'는 기분이었으니

이제 그 마무리를 해봅시다
다소 장문이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는건 항상 중요하니까요




일하고 싶어요

  참……경제 시장이 안 좋아서 그런 건지 내가 딸려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지겨울 정도로 인턴이 안되더군요 ㅠ 2월까지는 우리들의 친구 해커스에서 열심히 보카를 외웠지만 3월이 되면서부터는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친구들은 학교 간다고 해서 놀아주지도 않지, 겨울에 놀았기 때문에 이력서에 쓸 내용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지, 일은 하고 싶은데 나를 써주지는 않고……해서 어디 외국으로 도망 가고 싶은 마음에 엄마 몰래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두 번의 면접을 보고 떨어졌고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4월에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이력서를 제출할 때에 일단 ‘모집공고가 나지 않은 곳까지 전부 다 배포+취업게시판에 올라온 회사에 제출’을 섞어서 진행했습니다. 전자는 연락이 올 확률이 낮았지만 후자는 면접까지 연락이 오더군요. 빠르면 당일에 회신이 와서 그 다음날 면접 보러 간 적도 있었습니다. 컨설팅 회사 특성이 그런가 봐요.
 
 합격하기 이전에는 당연히 불합격도 있었겠지요?
서류에서 떨어진 곳은 이유를 물어볼 수가 없으니 면접을 실패한 원인을 제 나름대로 분석해 볼게요. 맨 처음 연락이 온 곳은 FM associate라는 회사였습니다. 취업지원팀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낸 곳입니다. 국내에 생긴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괜찮은 회사라는 평을 듣고 간 곳이었는데 면접방식은 약 한 시간 반 동안 이력서 중심의 질문(이 활동을 할 때는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 설명하라,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말하라)+게스티메이션(일년 동안 코엑스 메가박스의 총 수입을 도출하라)였습니다. 제가 판단한 실패 이유는 대답을 할 때에 ‘친구에게 말하듯이’ 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듯이 논리구조가 보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죠. 면접관께서 계속 ‘결론을 말씀해 주세요’, ‘추가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하셨던 이유는 논리가 빈약했고 질문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 평소에도 연습을 해야겠어요.
 
 합격한 곳은 마지막으로 4월에 저에게 연락을 한 Valtech 컨설팅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삼성-오픈타이드, LG-엔트루, SK-Valtech 이렇게 국내 로컬 컨설팅 회사들이 있지요. 희한하게도 Valtech측에서는 4월에 저에게 연락을 했지만, 제가 2월 말에 보낸 이력서를 가지고 계시더군요. 일손이 필요할 때에 빠르게 사람을 구하기도 하지만, 한번 보낸 이력서는 해당 회사에서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에 연락하는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첨언하자면, 영문이력서를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신 분은 반드시 따로 양식을 구해서 여러 번 반복해 쓰시기 바랍니다. 이게 그냥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최대한 프로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한 장짜리 이력서에 수없이 많은 손이 가더군요.
 
발표를 준비해 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이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 산 캠코더로 인사하는 법도 연습하고, 정장도 제대로 입어보고 여하튼 부단히 노력 했습니다. 면접 과제가 까다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에 주말을 전부 쏟았어요. PPT를 만들어오는 과제였는데, 주제는 [방송통신부의 홈페이지를 커뮤니케이션의 3단계로 구분하고 거기에서 사용자를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라] 였습니다. 처음에 과제를 들었을 때는 오나전 패닉상태였습니다.  5학기를 다니면서 커뮤니케이션의 3단계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도 없단 말입니다 ㅠ
 
 하지만,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거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시는 선배님한테 여쭤 본 결과(다시 한번 범중 오라버니한테 감사 드립니다) 해당 과제의 핵심은, 저의 논리 과정을 보는 데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해답일 수도 있는게, 전공이 경제인걸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를 궁금해하기 보다는 ‘내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궁금해하는 게 인지 상정이겠지요.
 
 혹여나, 면접을 보는 기업에서 까다로운 과제를 내준다면 (까다로운 주제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제자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신 뒤에 접근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수능 볼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출제자의 의도가 여기서도 빛을 발하더군요. 역시 고등학교 공부가 평생 가나 봅니다-_-;
 
 하지만 고난은 끝이 아니었으니, 열심히 준비한 PPT와 여러 번의 발표 모니터링으로 무장하고 갔건만 정작 PM님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ㅠ 이력서로는 어필할 꺼리가 전혀 없던 저였기에 믿을 건 PPT밖에 없었습니다. 이력서에 관한 질문만 하시는게 불안해서 발표를 준비해 왔다고 말씀 드리고 계획한 대로 발표를 했지요(모든 것은 계획대로 후훗) 어버버 거리기는 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정확히 전달 했습니다.
이로서 저의 2달간의 임시구직활동은 막을 내렸지요
 
컨설팅회사 인턴이 연수원에 간다고?

 컨설팅 업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프로젝트 베이스로 움직이는 곳이라 빠르게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면접보고 그 다음날(또는 주)부터 일을 시작하는 거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던 게, SK자회사였던 Valtech에서 인턴을 쓰려면 이번에 SK에서 운영하는 상생인턴 프로그램으로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속 SK상생인턴이고 Valtech에 파견 나가 근무하는 형식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연수원에 다녀오라는 특명을 받고 2주간의 연수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국내 대기업에 대한 관심이 없었어요, 이제 겨우 5학기를 마친 상태였고 취업에 대한 생각조차 없던 시절에 신입사원들이 받는 연수를 다녀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연수원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아래의 주소를 참고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연수원 얘기만 하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양해해 주시와요~ http://mindongmi.tistory.com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

 첫~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일들을 회상하면 뭔가 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서툰 행동들에 손발이 오그라 들기도 합니다. 지금 제 심정이 그것과 같은데요. 맨날 노란 후드티에 청바지만 입고 다니다가 구두신고 다니면서 발에 물집도 많이 잡혔고, 몸에 딱 맞는 블라우스 때문에 앉을 때마다 조심했던걸 생각하면 참 무식했지 싶어요. 게다가 회사에는 아침마다 빵과 커피, 음료수가 항상 꽉꽉 채워져 있어서 항상 유혹에 시달려야 했어요 ㅠ
 
 저는 처음부터 프로젝트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제안서 작업먼저 참여했습니다. 두 달 반 동안 일을 하면서 처음 2주는 제안서, 2주는 프로젝트 보조(번역이나 리서치), 4주는 프로젝트 참여를 했습니다. 중간중간에 쉬는 때도 있었고 가끔 월차 내고 학교로 놀러 오기도 했지요
 
제안서 쓸 때도 인턴이 필요한가요?

 처음에는 제안서에 투입된다는 사실 자체에 많이 놀랐습니다. 프로젝트에 일손이 필요해서 뽑힌 줄 알았거든요. 지나고 보니 오히려 저에게 더 좋은 경험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참 고민이 많았어요. 막상 회사에 와도 제안서에 참여하기 때문에 야근도 없고 주말근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회사에서 오랜 시간 있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는데 상황은 많이 다르더군요. 분명이 일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저는 PPT를 교정보고 재편집하는 등의 일을 했으니 맘 먹고 몰아서 하면 금방 끝났으니까요.
 
 제안서를 쓰는 도중에 다른 팀 제안서가 떨어지는 것도 보고(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군요) RFP라는 게 뭔지, 제안서라는 게 뭔지 알아가면서 2주가 흐르고, 제안서가 발표 나기 전까지 기약 없는 휴식이 주어지면서 회사에서 딴짓도 좀 하고 학교에도 갔습니다. 쉬는 타이밍과 각종 동아리 행사날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그런지 친구들 중에서는 일 안하고 놀러만 다닌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오해에요. 일 했습니다
 
오늘부터 인사동에서 지원업무에요

 빈둥빈둥 살을 찌우면서 놀고 있는 어느 날, 인사 팀에서 갑자기 부르시더니 ‘오늘’ 1시부터 다음주까지 인사동에서 근무’라고 하시더군요. 그 얘기를 들은 게 당일 11시였습니다; ‘내가 너무 티 나게 놀았나?’하는 생각을 하며 애인이랑 데이트할 때도 몇번 안갔던 인사동을 2주간 매일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일이 제가 생각한 RA의 업무였던 것 같아요. 해외로 보낼 공문서를 번역하고, 주로 논문처럼 되어 있는 자료들을 정리해서 다른 분들이 보기 좋게 만들고, 따로는 홈플러스 가서 사무용품도 사오는 등 업무가 좀 더 효과적으로 돌아가는 데에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주목 받는 사업이어서 그랬는지, Valtech이사님 한 분 이랑 같이 일을 했는데 식사하러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눈치 없이 궁금한 거 다 물어보는 성격이 좋은 점도 있더군요. 컨설팅이라는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추세나 사회생활의 고됨;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어요.
 
프로젝트에 투입되셨습니다

 지원업무를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아웃룩으로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계정이라 눈 여겨 보질 않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었어요. ‘이전 번에 제가 참여한 제안서가 통과되었으니 해당 프로젝트에 투입되지 않겠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주까지만 인사동에서 일을 하고 바로 프로젝트에 투입 되었지요. 제가 제안서에 글 한 줄 보태지 않았지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프로젝트 업무를 하면서 일한 기간은 정확히 4주인데요. 이 4주 동안 한 일은 지금 생각해봐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습니다. 맨 처음 사무실 리모델링 할 때부터 참여해서, 사무실 하나 차리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지,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가서는 직접 관계자분들 인터뷰를 따라다니기도 했고, ‘선진사례분석’부분에 에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산출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보조’의 역할이 아니라 ‘팀원’으로 일을 한다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PM님이 크게 도와주셨고, 저 또한 적극적으로 임한 덕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로젝트에는 저를 포함해서 2명의 인턴과 5명의 컨설턴트 분이 계셨는데, 전체적으로 화목하고 인간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전에 그토록 바라던 야근과 주말근무가 왜 힘든지를 알 수 있었던 기간이기도 하지요;
 
저 이제 학생이에요

 일이 끝난 지 얼마 안되서 글을 쓰자니 주관적인 부분이 많이 개입되었군요, 결과적으로 보면 다른 인턴에 떨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진짜로)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 학생 때 놀아야 한다는 거 두 번째는, 사회에 나가는 순간부터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죠. (갑을병정무……처럼 수많은 상하관계가 형성되더군요) 전자는 인생의 진리인 것 같고, 후자는 향후 제가 사회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줬어요. 갑이 된다면 착한 갑이 되고, 을이 된다면 스트레스 받지 않는 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향후 저의 커리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학생이니까 놀고 나서 생각할래요.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도 놀 생각이 드는걸 보면 아직 철이 덜 든 것 같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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