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영화사 시간 첫번째 레포트,
마음 같아서는 화면도 캡처해서 올리고 싶은데 이놈의 저작권법 ㅠ
이름만 들어보고(사실 들어보지도 못했다) 보지 못했던, 하지만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을 봤는데. 음..
더 배워봐야 알겠다


지난 학기에 인사동 근처의 작은 회사에서 인턴을 했었다. 일을 많이 시키는 회사를 다닌 덕분에 주말에도 근무를 했던 나는, 애인과 데이트 할 때도 잘 안 가던 인사동을 거의 매일 지나다니고는 했다. 그 중에 가장 좋아하던 장소는 탑골공원 이었는데, 묘하게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과 내가 살아온 시간의 몇 배는 더 사셨을 분들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낯선 기분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그곳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 나에게 가끔 한 두 분의 어르신들이 말동무를 청해 오셨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마치 책을 읽는 기분으로 듣고는 했다. 그분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이야기가 아닌 책 속의 이야기처럼 들린 이유는 단 한가지, 대화 속에는 항상 전쟁에 관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르신들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파이자(전화의 저편)이 주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바로 옆에서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 해 주는 듯한 느낌(흑백화면 이었기 때문에 그런 기분을 더 강하게 느꼈다). 물론 폭력·분열·상실·고통·드라마 등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전쟁 영화는 현대에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파이자(전화의 저편)는 전쟁 상황 속에서 군인이 아닌 일반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중점을 둠으로써 현대의 그것과 차이를 가진다.

  6개의 에피소드는 독일군이 이탈리아를 점령하려는 과정을 바탕으로 로마, 피렌체 등의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잊는 연결고리는 전쟁상황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특히 나처럼 눈치가 없는) 각 에피소드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감독은 에피소드의 첫머리에 전쟁상황에 대한 뉴스 형식의 간단한 설명을 넣어 줌으로써 그들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똑 같은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영화는 상당히 빠르게 전개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인물의 대사와 행동 또한 주저함 없이 전개되며, 영화의 구성상 짧은 이야기를 여러 개 나열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에피소드가 인물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상황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형식적인 특징 때문에 파이자(전화의 저편)은 영화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또한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영화의 형식을 매치했다는 생각도

파이자(전화의 저편)의 구성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이 영화를 다른 식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열쇠다. 

감독은 왜 하나의 줄거리로 내용을 통일하지 않고 각기 다른 시간대(물론 전쟁 중이라는 설정은 불변한다), 각기 다른 직업과 성별,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을 보여주었을까? 그것도 6편이나 묶어서.

그 해답은 6개의 에피소드 중에 첫 번째 에피소드와 마지막 에피소드를 제외한 다른 4개의 에피소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에피소드들은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 비교적 안전한 지대인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야기를 주도해나가는 인물로 군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포함함으로써 전쟁 상황 중의 일반인의 삶과 감정에 대해 보여준다. 부모나 애인을 잃은 사람, 생존을 위해 거리의 여인이 된 사람, 전쟁 중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았던 수도원의 이야기는 실제로 전쟁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다. 보통,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들을 전쟁이라는 단어와 연관하여 현대 전쟁영화가 주로 다루었던 빗발치는 총알·전우애·부상·격전지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파이자(전화의 저편)에서 감독은 그것 이외의 전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영화는 전쟁을 겪은 사람이 나에게 직접 이야기 해 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전쟁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감독은 전쟁 중에 군인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구성한 것이 아닐까.

전쟁을 한번이라도 겪은 사람은 그 기억을 평생 안고 간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전쟁 경험자는 전쟁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신이 느낀, 자신이 본 전쟁의 기억에서 일생 동안 자유롭지 못한다고 한다. 평생을 전쟁의 상처에 얽매여서 사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방법 중에는 전쟁에 대한 끔찍한 기억들을 마음껏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픈 기억을 숨기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느낀 감정을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그 기억이 자신의 것 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삶을 살았던 모두의 것임을 스스로 알게 하는 치료 방법이다. 파이자(전화의 저편)또한 전쟁의 기억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감독이 마치 전쟁 상황의 삶을 '기록'하는 듯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시간이 오래 지나서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보여주고,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도 그때의 기분을 느끼게 함으로써 전쟁은 소수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감독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전쟁의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한 것이다.

전화의 저편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1946 / 이탈리아)
출연 렌조 아반조, 마리아 미끼, 윌리암 터브스, 다츠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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