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린왕자 라는 책을 그다지 감명 깊게 읽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들어와서 처음 산 책이지만, 그 이유가 재미있었기 때문보다는 불어 원문과 영어 번역, 한국어 변역이 같이 있는 책의 구성이 신기했기 때문이지요. 그때 저와 같이 책을 산 친구는 한창 불어를 공부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 친구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책을 집어 들었을 수도 있겠군요.

        많은 사람들이 어린왕자를 읽고 나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중 대부분은 여우 또는 장미와의 에피소드에 귀를 기울이지요. 그 에피소드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얼핏 보기에는 짝사랑의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친구들을 더욱 더 열광했습니다. 저 또한 짝사랑을 앓았던 시기가 있었기에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이 묵직하게 다가왔던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런 식의 감명은 다른 책에서도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역시 현재 어린왕자의 인기는 어느 정도 거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린 왕자가 싫어할만한 삐딱한 어른으로 자라난 저는 만약 현실 세계에서 어린 왕자와 같은 아이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귀찮아하며 상자 하나 그려주고 쫓아버렸을 것입니다. 그가 미소년이라면 조금 더 상대해주었겠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모든 어른들이 범하는 꼬장꼬장함을 보이기 이전에 어린 왕자를 생각해 봅니다. 책이 아닌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가 아닌 어린 왕자. 그 자신을 말이에요. 생각해보면, 어린 왕자는 참 사교성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는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기만 했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혼자 살아서 그런지 자립심은 강하지만, 말주변도 없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법도 서투른, 예를 들자면 맞벌이 가정에서 자란 내성적인 아이라고나 할까요? 숫기 없는 어린아이는 여러 별을 떠돌아다니지만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는커녕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싫증나서 돌아 나오고는 했지요. 그런 어린아이에서 왜 이렇게 많은 어른들이 동요를 하는 걸까요. 게다가 그 글을 쓴 사람도 신체적으로는 전부 성숙한 어른이었는데 말이에요.

    저는 어린 왕자가 사실은 어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어린 왕자 같은 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처음 보는 것에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갔다가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돌아 나오는 모습이라던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려 줄 때까지 떼를 쓰는 모습이라던가,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해있건 말건 자신만의 상념에 빠져 있는 모습은 어른과 아이에 상관 없이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어른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더 많이 본 것 같아요. 설마 아이 같은 어른을 본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기본적으로 어린 왕자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남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못하지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지구까지 왔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혹성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관찰만 할 뿐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지요. 그것이 어린 왕자의 매력이지만, 저는 올바른 여행자의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결국 자기 별로 돌아가 수 밖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 왕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나 봅니다. 자신의 분신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거든요. 보통은 어린 왕자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이 어른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게는 어린 왕자가 어른이에요. 아이의 탈을 쓴 어른이요. 오히려 어른 못지않게 꼬장꼬장하면서도 순진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린왕자의 인기 비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책으로서의 어린왕자 보다는 사람으로서의 어린 왕자가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p.s.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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