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1 - [여행/태국] - 2009 태국 워크캠프 참가 보고서

    워크캠프에 간다면 가장 걱정되는게 뭘까? 언어, 음식, 돈? 모두 다 해당이 되겠지만 내 경우엔 '그곳에서 내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것이었다. 한학기를 쉬고 인턴을 하던 중에 지루한 회사 생활을 탈피하려고 찾았던 탈출구가 바로 워크캠프였으니, 워크캠프가 회사생활보다 더 재밌기를 기대한 것은 물론이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지 굉장히 궁금했다. 흔히들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나. 나 역시 흔한 일상 이외의 곳에서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를 희망했다.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의 내 모습을.

 

 

   위에 보이는 표는 우리팀의 리더인 Thor가 첫날 우리에게 그려준 스케쥴 표이다. 위에 쓰여진 모든 일정들을 우리는 소화했다.(심지어 비가 온다 하더라도) 태국의 기후는 비가 갑자기 오고 갑자기 그치기 때문에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 귀찮았던 일들이 하나씩 다 추억이다. Thor가 우리에게 준 추억들. 다른 워크캠프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팀의 리더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사람중에 가장 리더다운 사람이었다. 침착하고 인내심이 강했으며 무엇보다 배려심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하는 사람이었다. 일정만 줄줄히 나열하는 식의 소감 보다는 내가 거기서 만난 친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 사람 한명한명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기에.

 

   

   우리 팀에는 한국인이 나를 포함해 2명이 있었다. 이 위에 내가 Thor와 함께 찍은 사진에 나온 빨간 옷을 입은 남자분과 나, 이렇게 둘인데 처음에는 한국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지만(동남아국가를 워크캠프 할 때 한국인을 만날 확률은 90%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이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같은 한국인인지라 그 분이 이 후기를 볼 수도 있기에 약간 민망하지만, 나에게 '성실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말해준 사람이었다. 모든 활동에서 가장 열심이었으며 가장 많은 힘을 들이고 가장 적게 불평하는 사람이었다. 얕은 수를 쓰지 않고 자신을 낮추며 항상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열린 사람이었다. 실제로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날인 go to the school 날에 가장 많은 아이들이 이 분을 따랐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생각나더라. 우리 팀 12명 중에 아이들이 많이 따르던 친구들은 정말로 성격이 좋았다. '이 분'과 관련된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몇 개 말하자면, pounding rice 날에 보여준 성실성과 go to the jungle날에 보여준 책임감이었다. 전자의 에피소드는 쌀과 쌀 껍질을 벗겨

 

내는 작업을 할 때에 가장 많이 움직인 사람이었으며, 정글에서 자른 대나무로 컵을 만들 때에 손바닥에 피가 나는데 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을 해내는 것을 보면서 나를 많이 부끄럽게 해 주었다. 해야만 하기에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달까. 개인적으로 가장 워크캠프에서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많은 얘기를 하고, 가장 친화력이 좋았던 멤버인 Jhonathan은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Jhonathan이 가장 많이 활약한 것은 go to the school날이었는데, 여러 아이들 앞에서 영어 노래를 가르칠 때에 마치 mc처럼 상황을 리드했었다. 한마디도 안 통하는 아이들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지만, 그가 show man이라고 불린 것은 단순히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어 주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애교 있는 그의 성격 덕분에 우리 팀에 있는 거의 모든 여자들은 Jhonathan에서 '사랑한다'는 말이나 토닥거림을 받았던 것 같다. 얼핏 보면 바람둥이 기질이 있어 보였지만, 의외로 정이 많은 친구로,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 들자면, 


주말에 chiang rai 야시장에 놀러 갔을 때 내가 잠깐 야시장 밖으로 나갔던 일이 있었다. 내 딴에는 일행이 있는 곳에서 조금 멀리 나가는 것일 뿐이기에 일행에게 특별히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내가 사라진 것으로 알던 사람들은 야시장 전체에 방송을 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나를 찾는 등, 한마디로 난리가 났었다. 한참의 소란 후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야시장으로 돌아오자 가장 나를 반겨준 사람이 Jhonathan이었다. 이렇게 종종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Jhonathan은 내가 살면서 처음 만난 이스라엘 사람이었지만, 덕분에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좋은 편견을 심어주었다.


    실제 의사로 일하고 있는 Amber는 choloe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네덜란드라고 하지 않고 홀란드라고 말을 해서 폴란드 사람인 줄 알았다; 결국 amber한테 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 영어를 굉장히 잘 하는 친구였는데, Jhonathan은 의대생이고, Amber는 의사이기 때문에 둘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사라는 직업은 어느 나라를 가나 유용하게 쓰이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실제로 우리가 지내던 2주 동안 thor의 아버지가 칼에 베이셨고, jakie와 ashlery가 피로로 쓰러졌을 때 모두가 amber에게 도움을 청했다. 복잡한 약은 아니더라도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으로 의사가 하고 싶다고 느꼈다.


    Choloe는 우리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33살이었다. 프랑스에서 건축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전혀 딱딱한 분위기가 나지 않고 친근하게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분명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을 텐데 내가 말을 걸었을 때에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달까. 사람을 항상 웃으면서 대하는 모습에서 싹싹하고 야무진 언니 같은 느낌이었지만, 개인 프라이버시를 많이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역시 프랑스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 팀에 있는 프랑스인들은 의사소통상에 문제가 전혀 없을 정도로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마지막 날에는 프랑스식 팬 케잌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삼성 mp3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더 호감이 가기도 했다.


    Sara는 늘씬한 스페인 미녀로, 애석하게도 말을 알아듣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아무래도 스페인 억양이 많이 섞였기 때문이겠지만 내가 특히나 sara와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더욱 답답했다. 다행히 Jhonathan이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서 가끔씩 sara의 통역을 해주었는데, 우리 팀 12명 중에 3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3명이었던 것으로 보면,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Sara는 과묵한 편이었지만, 아이들을 좋아하며, 열정적이었다. 언어상의 문제 때문인지 말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이 귀찮게 놀아달라고 할 때에 진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즐기면서 놀아주던 사람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몸으로 통하는 언어가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sara는 감정 표현을 적절하게 할 줄 알았다. 체력도 좋아서, 다들 피곤해서 자고 있을 때에도 마을 사람들과 얘기하러 다니며 워크캠프에서의 순간순간을 즐기려고 했다. 마지막 날에는 잔뜩 취한 상태에서 갑자기 새벽에 산책한다고 없어지는 바람에 찾아 다니느라 진땀을 빼게 하기도 했지만, 열정적인 스페인 여인답게 알코올 정도는 쉽게 희석시키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그리운 멤버이기도.

 

우리가 했던 활동 중에는 아마도 아이들과 했던 활동, 생활을 체험했던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사람과는 다른 갈색 피부를 가진 아이들이 너무나 예쁘게 보였다. 나는 갈색 피부가 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하얀 사람들을 좋아하더라. 같은 동양인인 나보다는 백인 아이들을 더 좋아해서 약간 서럽기도 했다. ㅠ 우리 팀에 있는 흑인 아이도 인기가 좋았는데, 많이 다를수록 더 끌리는건 어쩔 수 없는건가.

 

쌀도 만들어 보고, 지역 주민들의 전통 공연도 보고, 대나무로 식기도 만들고 전통 칼도 만들고, 정글에서 하룻밤 지내기도 했던 모든 일들이 정말 큰 자산이었다. 이런 워크캠프를 가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인 것, 우리 티 리더인 thor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이루어진 일인지 상상도 안 갈 정도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협조해 주었다. 다른 워크캠프 후기들을 읽어보면, 마음에 안 들어서 떠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 팀은 나름대로 협조도 잘 되고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이 완벽했다. 이만큼의 퀄리티를 뽑아내는 활동이 또 있을까. 내 인생의 첫 워크캠프였지만, 아마도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이 thor의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도. 게다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주려는 그의 노력도 감동적이었다. 주말에는 원래 리더가 동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우리한테 관광을 시켜준다고 가까운 chiang rai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관광 시켜 주고 통역해주고 하면서 정작 자기는 기름값만 받고 차에서 잤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도 쉽게 흥분하지 않고 판단력이 뛰어났으며, 누구보다도 많이 고생했다. 그 게으른 도시사람들에게 시골 일을 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억지로 떠넘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몫까지 짊어지는 모습에서 솔선수범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았다. 아마 우리 때문에 마음 고생 많이 하였으리라. 나중에 wwoof를 태국에서 열고 싶다고 했는데, 그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고작 2주만의 워크캠프로 20여 년 동안 고수해온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걸 바란 것도 아니었고. 다만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시골에 갔을 때에 도시와는 다른 새로운 내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생각보다 체력이 형편 없고, 끈기도 없었고, 귀찮아 하고, 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보았다. 아이들이 귀찮게 달라붙을 때에 어른답게 숨기지 못하고 전부 드러내어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손재주가 좋지 않아 지붕 만들 때에도 버벅 거렸고, 힘이 센 것도 아니라서 대나무를 짊어질 때에는 균형을 쉽게 잃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장 먼저 일어났으며, 맡은 일은 끝까지 마쳤고(투덜거리기는 헀지만;) 겁이 나더라도 배운다는 생각으로 시도했었다. 물론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 많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모습만 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곳에서의 내 모습, 내가 만났던 사람들. 2달이 넘게 지난 지금도 계속 그때 했던 말과 생각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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