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을 살아온 이 집이 이제 곧 무너진다. 

막내 동생을 두 번이나 잃어버린 3단지 놀이터는 이미 허물어졌겠지, 아니 거긴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아놨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전부 다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 우울해졌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건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는 둔촌아파트의 마지막 기억을 사진집으로 만들려는 펀딩이 있었다. (https://www.tumblbug.com/dcaptxgajeong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은 그들이 나고 자란 곳을 고향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내가 어렸을 떄부터 살아온 고덕주공 3단지, 6단지가 내 고향이다. 

이곳의 하천이 그럴싸한 뚝방길이 되고, 하우스와 논밭 밖에 없던 부지에 대기업 건물이 들어설 때는 마냥 기뻐했었다. 우리 동네가 발전하는구나, 버스 노선이 많아졌구나, 하면서 기뻐하기만 하던 내가, 이곳을 완전히 허문다는 생각에는 목이 메인다. 내가 이곳에 살지 않더라도 이곳은 영원하기를 바랐는데. 이기적인 마음을 뒤로 한채 카메라를 들고 평생 한 번도 찍지 않았던 나의 고향을 사진 안에 잡아 두었다. 


노을 무렵에 사진기를 들고 가면 이런 마법이 기다리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쉬었을 정자 한 켠에는 쓰레기 더미가

항상 나쁜 생각이 들게 했던 아파트 뒷길. 이곳에서 흡연을 하는 청소년들을 여럿 보았다. 

오른쪽은 내 모교. 나 다닐 때는 이렇게 알록달록하지 않았는데

굴뚝. 뭐에 쓰는지 모르겠다. 

모교 2. 선거날만 되면 이 문을 열고 들어가 투표를 했다. 그때마다 잠깐씩 바라본 교실은 어쩜 그렇게 작은지

내가 처음으로 주사를 부린 정자다. 이곳에서 친구들한테 전화를 돌리며 뭐라고 말을 했었는데

컴퓨터 크리닝 집이 참 빨래를 잘 해 주었다.

교회를 둘러싼 담쟁이들

문방구와 떡볶이 집이 가득했던 상가는 이제 부동산이 자리잡고 있다. 

이 윗층에 있는 서예학원에서 서예를 잠깐 배웠었는데, 지금은 무서워서 올라가자 못하겠다. 

이 상가는 이상하게 하수구와 지린내 냄새가 난다. 왜 그랬을까.

3단지 상가 안에는 엄마 친구분이 하시는 가게가 2개 있었다. 가끔 가면 사탕을 주곤 하셨는데

뭔가 벌써 허물었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괜히 미안해졌다. 

나는 317동에 살았고, 그 앞에 있는 놀이터네 막내 동생을 2번 두고 온 적이 있다. 

여기는 6단지...지혜마당은 벌써 문을 닫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만화방이라 즐겨 갔었는데 아쉽다. 

무너지는 단지 안에 눈치없이 들어온 카페. 예쁘고 조용한데 상가 뒤편에 숨겨져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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