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알바트로스+의 주제는 공감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 읽은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 나오는 프레임의 개념을 도입했다.
초반부에 너무 힘을 쏟은 나머지 후반부에 공감에 대한 본격적인 주장을 이끌어야 하는데 자꾸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한 얘기로 흘러가버려서 당황스러웠다. 또한 글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프레임의 정의가 순간순간 흔들리는 등의 문제점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4살짜리 어린아이처럼 대두형(서론이 왕창 길고 본론, 결론이 빈약한)의 글이 되어 버렸는데 글의 호흡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독자의 주의를 끌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은 아닌지..
 


 

동남아인, 외국인, 외국인 노동자, 불법 체류자, 범죄자, 걸면 되는 사람, 다른 나라 사람, 3D직업, 노동자, 막노동, 무섭다, 방글라데시, 개발도상국, 못사는 나라, 아시아 최빈국, 무슬림, 이슬람, 모스크, 여성차별, 폐쇄적, 기타 등등…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을 보고 제가 머릿속에 떠올린 단어들이에요. 객관적인 관점에서 위의 사진은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는 20 남자의 사진을 뿐이에요.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전부 부정적인 것들 뿐이네요. 이렇게 저는 방글라데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씀 드리면 2010 4월이 되기 전까지 였지만요.

 

2010 4, 저는 방글라데시로 여행을 떠났어요. 마침 인도에 있던 중에 버스 타고 8시간이면 방글라데시에 있다는 말을 듣고 '아시아 최빈국'이었던 방글라데시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약간은 충동적으로 방글라데시로 떠나게 되었지요. 전화로 아빠에게 방글라데시에 간다고 했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아빠 다음주에 방글라데시 갈 거야"하니까 바로 이어서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 "조심해. 한국에서 했던 사람들 중에 한국인에게 반감 있는 사람이 있을 있단 말이야~아무하고나 하지 말고 항상 조심해서 다녀"였어요. 조심하라는 말씀은 어디 가나 항상 듣는 말이지만 이유가 낯설었답니다.

'한국인에게 반감이 있는'방글라데시 사람, 한국인에게 반감이 있는 '외국인 노동자'

 

얘기를 듣고 나서 저도 모르게 '조심해야 한다' 마음이 생겼나 봐요. 방글라데시에 도착해서도 며칠 동안은 마치 한국에서 방글라데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약간의 거리를 두었답니다. 거기서는 제가 이방인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하는 , 음식에 적응하고, 택시를 타는 날보다 버스를 타는 날이 많아지면서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날이 많아졌어요.

 

한번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 도중에 버스 옆자리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아주머니는 가족 때문에 시내에 가시는 길이라고 하셨어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얼마 전에 남편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한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남은 아이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눈물을 보이셨어요. 아주머니라고 말은 했지만 또래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어요. 순간 저도 모르게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넸답니다. '괜찮아요, 아이들이 있잖아요' '엄마가 약한 모습 보이면 되요' '아들이 자라서 아빠의 몫까지 거에요' 순간만큼은 상대방이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무조건 위로를 했을 거에요. 사람의 슬픔에 대해 마음으로 위로하는 . 공감에서 나오는 위로의 말을.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모두 짐작하셨겠지만 저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는 저의 선입견은 옳지 않았어요. 너무 당연한 얘기라는 거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수긍하기 힘들었어요.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 구석에는 의심을 품고 있었던 거에요. 제가 이토록 강한 선입견,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게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프레임(생각의 ) 맞춰서 사물을 바라본다. 언어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프레임은 개인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생각한 모든 것들로 인해 형성된다고 해요. 예를 들어, 저는 동안 매스 미디어, 인터넷 기사, 경험, 아빠의 말을 토대로 <저개발 국가> 프레임을 형성했습니다. 이미 저에게는 부정적인 프레임이 형성되어 있었으니 제가 방글라데시라는 단어를 받아들일 때에도 당연히 부정적일 밖에 없을 거에요. 프레임은 범위를 확장해서 방글라데시가 아니라 인도데시아나 라오스 같은 비슷한 부류의 나라를 받아 들일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나라의 특징을 생각하지 못하고 <저개발 국가> 프레임에 집어 넣어 버리는 거지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식의 과정에서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진실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 [EBS 다큐 프라임 - 인간의 얼굴. 내면의 질실] 편에서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생각의 안에 대상을 집어넣음으로써 우리는 자연스럽게 개체의 특징을 무시하고 프레임의 특징과 개체의 특징을 동일시 합니다. <흑인> 프레임 안에서 다수의 엘리트 흑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있어요.

 

공감은 대상이 자기와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해요. '감정이입'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면 조금 쉬울까요? 옆에서 누가 여드름을 짜는 모습을 보면 나도 왠지 모르게 아파요. 여드름을 짜이는 대상에 공감했기 때문이에요. 나에게도 있고 너에게도 있는 여드름이니까요. 이렇게 나와 너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 너의 기분을 나는 이해할 있다는 생각을 전부 공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프레임 안에 대상을 가둬 버리면 대상과 나의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져요.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하면 대상이 어떤 특징을 가지더라도 해당 프레임 안에서만 생각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생기를 잃고 튀튀하게 색이 바래버립니다.

 

그렇다면 프레임을 없앤다면 조금 대상과 공감하기 쉬워 질까요? 질문에 대답하기 이전에 과연 프레임 없이 사고하는 것이 가능한지 한번 살펴봅시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받아들인 모든 것들이 프레임을 형성해요. 저에게 <엄마>라는 프레임은 국민 어머니 김혜자 씨가 아닌 바로 지금 거실에 계신 우리 '엄마' 인해 형성된 것이죠. 이처럼 프레임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또한 미디어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사회적이에요. 프레임 없이 사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답니다. 부정적인 프레임에서 대상을 끄집어 내서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공감이 대상과의 공통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해답은 의외로 쉽게 나옵니다. 여기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겠지요. 어머 영화를 좋아하세요? 저두요 호호. 하면서 말이에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공통점도 많이 발견할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렇게 찾아낸 상대방의 특징을 섯불리 집단화 시키지 않는 거에요. '고양이를 좋아한다' 사실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프레임에 집어 넣으면 되요. 그렇게 하면 위에서 말한 프레임의 함정에 걸리게 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대상) 대화(탐색) 하면서 공통점을 찾아낸다. 머릿속에 프레임이 있어도 상관 없어요. 많은 대화, 탐색, 정보 수집, 토론을 통해 프레임을 확장하고 변화시키는 겁니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신문 기사 하나를 읽었다면 하나 읽습니다. 인터넷 토론방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정보를 찾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객관화가 이루어 집니다. 상반된 기사문을 읽으면서 반대편의 논리에서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불필요한 논쟁은 줄이고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분명하게 말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인정할 것들은 인정하는 발전적인 논의를 있는 거지요.

 

좁은 프레임 안에 갇혀서 내편 네편 편가르기를 하는 것은 대상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게으름의 결과에요. 글의 서두에 제시한 '방글라데시'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 또한 저의 게으름 탓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한 저의 실수였어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방글라데시에 대해 알아봤다면 많은 부분을 공감할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대상을 알아보는 , 단순해 보이지만 우리들을 공감으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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