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그가 손을 내밀어생명 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 - .3,22


    모태신앙이었어. 우리 엄마는 봐줄 사람 없는 일요일이면 나를 등에 업고 교회에 가시곤 했지. 그러다가 걷고, 뛰고, 말할 있는 나이가 되자 교회 유치부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돼었어. 그런 있잖아. 수학과목을 배울 때에도 처음에 배웠던 '집합'같은 단원은 가장 오래 전에 배웠지만 생생하게 기억나는거, 나한테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그랬어. 야훼의 말씀을 어긴 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최초의 인류. 그들이 인류의 시작이었다면 그들의 자녀들인 우리는 모두 죄의 피를 잊고 사는 거야. 여기가 바로 기독교의 기본 교리인 원죄가 생겨나는 시점이지.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야훼와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생겨난 아이들이야. 

     

    모진 형벌을 내린 덕분에 인류는 아주 많아졌어. 그들 스스로 나라, 도시, 공동체를 세우면서 서로 부대끼며 살게 거지. 여기서 야훼는 다시 우리에게 약속을 요구해.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갈등을 막기 위한 약속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십계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제삼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제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내라.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육은,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칠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제팔은,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제구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제십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십계명을 찬찬히 읽어 보면 우리가 지금 지키고 있는 법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있어.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아? 약속을 어겨서 만들어진 인류에게 다시 약속을 요구하는 야훼의 모습 말이야. 이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원죄를 이고 살아가는 우리를 여전히 믿으시는 야훼의 사랑? 아니면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통제하고자 하는 야훼의 마음일까?

     

    그래 알아.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성격학교 유치부 시절부터 항상 궁금했었어. 야훼는 조건 없는 사람을 주시는 대신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조건을 거셨을까. 그리고 다시 인간 세상 전체에 해당하는 법률을 정해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어느 정도의 '통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성경을 통해서 권력자의 통제 수단으로 쓰이는 약속을 발견한 거야.

     

    약속이라는 단어는 이상해. 마치 약속으로 연결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인식을 심어 준단 말이지. 그런데 약속에는 분명히 권력관계가 존재해. 국가의 근본이 되는 헌법이라는 약속부터 정말 가까운 사이와의 정말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말이야.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끼리 약속을 정하기 위해 논의한다고 해도 결국에 정해지는 사람의 의견, 혹은 하나의 내용 뿐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약속을 지켜야 하지. 왜냐하면 동의했으니까.

     

    예를 들어 볼까? 너는 수요일, 금요일 2교시에 경제학 원론 수업을 들어. 수업은 분명 네가 선택했지만 수업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너는 처음 수업을 개설한 사람의 조건 - / 2교시 - 동의한 거지.

     

    일일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피곤해 지지만 어쨌든 그래. 친구랑 영화 약속을 하든, 회사에서 근무를 하든, 집을 하든 간에 속에는 (권력) 가진 사람이 있고, 사람의 의도와 비슷하게 약속은 생기고 있어. 그리고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약속을 내리는 법원이라는 기관이 우리에게 벌을 내릴 때에도 약속을 사용하고 있지. 강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쪽이 선하거나, 다수의 동의로 정당성을 인정 받았다면 지시에 의해 약속을 정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오죽하면 사람들이 법대로 ! 라는 말을 협박조로 사용하겠니. 힘을 믿기 때문이야.

     

    권력기관이 법으로 지정한 약속을 어기면 벌은 받지. 당연한 일이야. 그런데 당연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희한하지. 이해가 된다면 내가 최근 우리나라에게 가장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사건의 이야기를 줄께.

     

     "사건발생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 '우석'법인 파렴치함과 1 인화원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조사조차 진행하지 못한 관리감독기관의 무책임함을 꾸짖고자 한다."

    이건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의 도가니 청원서명운동 이유야.

     

    우석법인은 자신들이 법정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 이건 약속을 내린 권력을 우습게 보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야. 왜나면 어겼을 별로 아픈 벌이 내려질 같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약속을 어긴 거거든. 이건 단순히 우석법인이 나쁘다, 혹은 법원이 힘이 없다 정도의 일로 넘어가서는

     

    내가 했지? 법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고, 가장 힘이 세다고. 그런데 이게 무시 당한다는 것은 앞으로 누구의 권위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뜻해. 야훼가 내린 벌을 아담과 하와가 무시 했다면 인류 커녕 지금까지도 아담과 하와 둘이서 에덴동산에 살고 있었겠지.

     

    그러니까 아무리 이해가 가지 않고, 그리고 아무리 가슴 찢어지게 원망스럽다고 해도 법전에 정해진 글귀를 무시하면 . 때에는 우리 전부를 무시하는 셈이 되어 버리니까. 네가 일은 법을 바꾸는 번째 일인 거야. 지금 네가 망설이고 있는 서명 운동 참여나 촛불 집회 참여, 혹은 반값 등록금 운동도 마찬가지야.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법을 무시하지 말고, 바꿔야 . 그리고 바뀐 법을 적용해서 나은 세상을 만들자.

     

    To. 파렴치한 죄를 지은 성폭행범들이 심신미약이라서, 초범이라서, 고의가 아니라서 고작 7~10 옥살이 한다는 판결에 분노하다가. 그게 법전에 나온 내용 그대로 적용한 결과라는 것에 답답해하면서 인터넷 게시판마다. 범인을 찢어 죽여라 등의 실천 가능성 없는 과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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