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나잇 스탠드 가능하다 59.31% 차지해 대학생들 대담성 보였다

대학생의 동거문제에 대해서 전체의 57%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남자의 응답률이 여자의 응답률보다 약 2배 정도 많이 차지했으며 혼전순결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 질문을 한 결과 가능하다는 의견이 약75% 차지했다. 가능하다는 의견 중 사랑한다면 무조건 가능하다는 의견이 39.41%로 가장 많이 차지했으며 아무런 조건 없이도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견도 15%나 차지해 결혼 전 관계에 대해서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나잇 스탠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는 59%가 가능하다고 응답했으며 가능하다는 응답자 가운데 남자가 68.48%, 여자가 31.51% 차지해 남자들이 성가치관에 대해서 더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데일리안 2007년 4월 22일자
 

 

 독후감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녀의 대화를 잠깐 살펴 보자. 이 둘은 연인 사이는 아니며, 지금 단둘이 데이트 중에 느닷없이 a가 말을 꺼낸다.

 

a.     우리 키스할래요?

b.    아니요

a.     왜요?

 

위의 대화를 보면, 지금 a b에게 성적인 접촉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데, b는 이를 거절했다. a는 남자이며 b는 여자라면 b a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했을까? 실제로 실험해 본 바는 없지만 b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성인여성이라면 성적인 접촉은 애인 또는 남편과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 생각에 기초해서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여성이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이 책은 위에서 가정한 b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갖고 있는 정조관념이란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의 사고방식이라고 말을 한다. 이는 결코 타 문화권은 아무하고나 성적인 접촉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성적인 접촉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유교문화권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감사의 표시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사과의 표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에스키모 사회에서는 반가운 손님에서 접대의 표시로 아내를 하룻밤 동안 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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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년 동안 당연하고 절대적이라고 여겨 왔던 정조관념이 이 책의 <5; 사랑과 소유> 을 읽고 난 후에는 각 사회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성에대한 개념은 성적인 접촉이
소유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직접 구두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익명을 전제로 만나는 인터넷 상에서는 남녀간의 성적 접촉을 a b에게 몸을 준다, a b먹는다, a b땄다 등의 표현으로 흔히 쓰이고 있다. (여기서 a b의 성별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표현 모두가 한 쪽이 다른 쪽의 성적인 소유권을 가진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가진다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역사상으로 약자의 위치였던 여성의 성적 권리가 남성에게 가짐 당한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여성의 생각은 무시되는 것과 동일했다. 가지는 사람은 가질 대상을 선택하지만 가짐 당하는 대상은 가지는 사람을 선택하지 못한다. 똑같이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에도 이 둘이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의 정도가 성별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다. 일처다부제인 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성적권리를 가지는 사람으로서 위의 예시와 성별만 다를 뿐 그것이 뜻하는 바는 동일하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여성의 인권이 점점 존중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적인 권리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의 인권이 점차 커져서 예전처럼 억압받지 않는다는 현상을 환영할 만 하지만 남녀간의 성적인 자유가 동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도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한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저울의 중심을 맞추기 위해서 가벼운 쪽에 무거운 추를 올려 놓는 것처럼 단순히 여성의 성적 주권이 강해지는 것이 성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권력자인 여성을 위한 성적 서비스가 생겨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성은 타인의 몸을
소유하는 것이고 그 소유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합쳐져서 소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소유관계에서는 권력이 빠질 수 없다. 소비관계에서도 돈을 지불하는 쪽이 돈을 받는 쪽을 지배한다. 성 시장이 형성되고 활발해지면서 성적 접촉이 원래 의미하는 친밀감의 의미는 퇴색되고 있다. 성적인 접촉을 하는 것에 소유, 소비라는 개념이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면 가장 가깝게 살을 맞대고 있는 남녀는 어쩌면 가장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닐까.


 성관계에서 남녀에게 나타나는 수많은 감정 중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점차 간과되거나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성이 소유의 의미이던 시절에는 배우자와의 배타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었고 성이 소비가 된 시대에는 입맞춤보다 더 높은 단계의 스킨쉽을 의미할 뿐, 다른 의미들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상징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만 치중했거나 짧은 신체적인 접촉만을 바라본 단편적인 시각이다. 성적 접촉에서 사랑 이 중요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위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쉽게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사랑이라는 말에는 지금 같이 있는 사람과 같이 지내면서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더 성숙해 지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친밀한 접촉을 통한 상징성의 실현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적접촉이 사랑의 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성에 대해 소유도, 소비도 아닌 제 3의 관점이 필요하다.


 살을 맞대는 모든 행위는 친밀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나와 이 사람은 통하고 있다소통의 의미를 가진다. 부모와의 잦은 스킨쉽을 시도한 영아가 그렇지 않은 영아보다 신체적으로 더 건강하게 자란다고 입증한 캥거루 케어, 부부관계가 원만한 사원이 그렇지 않은 사원보다 업무실적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는 스킨쉽을 통한 소통이 감정적 측면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은 단순한 신체적 접촉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친구관계에서도 형성되는데, 친구의 원래 의미인 오랫동안 가까이 사귄 벗 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소통도 가능하다. 때문에 억지로 결혼한 배우자 또는 돈으로 산 하룻밤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는 소통을 느낄 수 없다.


 사랑이라는 말이 어느새 식상해지고 있다. 대중가요 중에 한번도 안 들어간 곡이 없을 정도로 흔히 쓰이고, 불리고 있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랑의 원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찾기보다는 그 말이 뜻하는 단편적인 느낌에만 치중하게 된다. 설렘, 기쁨, 슬픔, 아련함 등의 감정은 대중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보다 자극적인 단어들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사랑 대신 소통은 어떨까? 애인과의 소통이야 말로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것인데 그 소통의 범주에 성을 포함시킨다면 성이 소유나 소비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앞의 대화에서 b
전 제 애인이랑만 해요 라고 대답했다면 이는 감정적인 소통을 하고 있는 사람과만 신체적인 소통을 하겠다는 주장이다. 대상을 선택하고, 그 대상과 단순한 접촉이 아닌 긴밀하고 생산적인 행위를 하는 것, 그 행위가 성적 접촉이라는 것, 그것이 사람 사이의 소유관계를 제외한 근본적인 의미의 성과 사랑이 아닐까



2008년 겨울학기 사회학 개론 시간에 썼던 글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지만, 확실히 여러번 생각하고 쓴 글은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맨 위의 기사는 레포트를 작성하는데에 모티브가 된 기사
생각이 바뀐 이후에 블로그에 올린 글이라 기사와 레포트의 연결점을 정확히 잡기가 힘들다. 진작진작 쓸것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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