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꽤나 여행을 많이 다녀 본 축에 속하는 사람인데도, 언제나 여행지를 고르는 것은 설레면서 약간은 걱정된다. 

시간을 마치 무한정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에는 사치스럽게도! 느즈막히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헬스장에 갔다가 크로아상에 커피 한 잔을 간식으로 먹고 숙소 강아지랑 노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전직 세계여행자이건 뭐건 간에 직장에 녹을 받아 먹고 있는 입장에서 여름 휴가는 금보다도 귀하다. 

이 귀한 시간에 나를 완벽하게 리프레쉬 시켜 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엄청나게 많은 서치를 하고 나서 결국에는 아래 세 개의 조건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곳으로 골랐다. 


국내 서핑샾을 조사했던 흔적은 여기에…

서식이 이상하지만 그냥 올림요..총 16개를 조사했었다. 



1. 조용할 것

- 아침을 깨우는 파도 소리,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동그랗게 둘러 앉아서 웃고 떠드는 술자리. 이 외의 소리는 소음이다. 

2. 바다가 가까울 것

- 눈 앞에 바다가 보이는 것은 물론, 바다까지 걸어서 3분도 걸리면 안 된다. 

3. 시간을 잊을 수 있을 것

-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어제인지. 아침인지 낮인지 초저녁인지 모르게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 


1번을 만족시키려면 주변에 다른 샾이 없어야 할것이고, 2번을 만족시키려면 어렵기는 하지만 블로그 후기를 보면서 '바다와 멀다'는 언급이 있는 곳들은 전부 피했다. 그렇게 해서 결정한 곳이 양양의 '서프스타!' 무엇보다. 2층의 여자 숙소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진을 보고는 바로 반해 벼렸다. 

의외로 서핑샾과 숙소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던데,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음…그래도 숙소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는게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정했다. 


자 그럼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토록 그리운 양양의 '서프스타'의 이야기를 해 볼까


까맣게 타버린 손등!샾에서 5천원씩 주고 산 팔찌가 마음에 든다 :)



체류일 : 2014년 8월 2일 ~ 8월 5일 (3박 4일)

숙소 : 게스트 하우스 

장비렌탈, 강습 유무 : 강습 1회(일대일), 전일 보드 렌탈, 2일 수트(3mm)렌탈



#1. 아…첫날…뭔가 뻘쭘해...

동서울에서 하조대로 가는 직행 버스는 18시 20분이 막차였다. 

막 버스를 타고 2시간쯤 가면 횡성 휴게소에서 쉬는데, 여해의 설렘때문에 쉬는둥 마는둥. 어서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강릉까지 갔는데 버스가 고장이 났다며 기사님께서 강릉에서 하조대로 가는 버스로 갈아 타라고 하셨다. 뭔가 불길…할뻔 했지만 장거리 버스가 퍼지는게 드문 일도 아니고, 마침 바로 옆에 하조대로 가는 버스가 오길래 그때까지 버스에 남아 있던 나와 남녀 커플이 옮겨 탔다. 

커플이라…커플 사이에서도 외로워 보이면 지는건데..외롭다…나도 친구들이라도 데리고 왔으면 좋았을 것을…

고백하자면 나는 혼자 여행다는걸 즐기기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소중한 사람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대체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상황과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혼자 올 때가 많고, 물론 혼자 와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재미있게 지낼 수도 있지만. 아직은 이렇게 만난 사람들 중에서 소중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이질감이 가시지 않는가 보다. 


하조대에 도착해서 픽업으로 전화를 하니 바로 작은 자동차가 왔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차로 5분밖에 안되는데, 걸어 갈 만한 길은 아니라고 하니 괜히 고생하기 보다는 픽업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


도착한 숙소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좋았던 건개와 고양이가 있다는 것!



"자기가 예쁜 줄 알고 코 자는 고양이..반해서 찍었다."


개와 고양이가 있어서 그런지 그놈들이랑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 왔다고 대장님이 말도 많이 걸어 주시고 술도 같이 먹고 밥 먹는데도 끼워 주시고 ㅠㅠ

혼자서 잘 다니기는 하지만 이렇게 말 붙여주는 사람 없으면 참 외로운데..다행이었다. 


여자방 사진은 찍지 못했는데, 아래 위로 각각 5개의 자리가 있고 사람 사이에 칸막이는 없었다. 

그냥 이불을 깔고 자는 식

큰 창이 있어서 바다를 아예 정면으로 볼 수 있고, 머리맡에는 콘센트가 있었다. 

사물함은 별도로 없음.


적당히 맥주 한 잔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진짜 첫날이니까..



"멀리서 본 풍경"



"2층 발코니에서 바로 바다가 보인다". 나도 처음에는 저 철조망이 신경 쓰였는데, 이 정도의 조용한 공간과 맑은 물이면 사진에 못나게 나오는 청조망은 큰 문제가 안되는 것 같다. 여긴 군사지역이라서 철조망을 쳐 놓고, 밤 10시 이후에는 바닷가 출입 금지다. 밤 늦게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있으면 짝 지어 지나가는 군인들이 보인다."


#2. 서핑은 서는게 다인줄 알았는데..

강습은 반 나절 정도 진행되었다. 

여기서 분명히 말하지만…정말정말 힘들다. 

나름 기초 체력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땅으로 치면 '걷기'에 해당하는 '패들링'(팔을 저어서 보드로 헤엄을 치는 동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헉헉 거렸다.


처음에 서프스타에 전화해서 서핑이 어떤 운동이냐고 대장님에게 물어 봤었는데 그 때 대장님이, 

'스노우 보드는 반나절만 배우면 지그재그로 움직일(일명 낙엽 쓸기) 수 있는 반면에 서핑을 그렇게 단시간에 배우는 사람은 없고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 겨우 설 수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 얘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노우 보드는 서서 시작하는 반면에 서핑은 파도가 있는 곳까지 가서, 파도를 잡은 다음, 그 위에 서는 것까지 모든 동작을 스스로 해야 하니까..

보드는 강사가 마주보고 서서 같이 내려올 수 있지만, 바다 위에서 그렇게 같이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령 나란히 헤엄을 친다고 해도 파도가 어디서 어떻게 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길이가 3m인 보드가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까히 있는게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점이 더 매력 아닐까.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패들을 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한참을 헤엄쳐 왔을 때의 성취감이나,

파도를 잡았을 때의 환희는 순전히 내 노력에 대한 대가로 돌아오는 거니까..


#3. 서핑이 아니어도 놀 거리가 많아요!

1)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프리마켓

이런 샾들이 그렇듯이..자주 오는 멤버들이 샾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사실 많이 걱정했던 부분이..그들까지 너무 친해서 나같은 낯선 사람이 낄 대가 없는게 아닐까…하는 점이었는데

물론 원래 자주 오는 멤버들끼리 친하고, 즐겁게 지내는 건 당연한 거지만 낯선 사람이 왔다고 배척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기사 그렇다면 샾을 제대로 운영 할 수도 없겠지만…


덕분에 주말 '프리 마켓'같은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회원중에 한 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싼 값에 내놓는 자리…

개인이 가지고 있었다기에는 그 보관의 깨끗함이나 종류에 놀랐지만(해먹을 두 개나! 사고 싶었는데 가지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ㅠㅠ)

더 놀라운건 가격…대부분의 물건을 5천원에서 만원 사이에 판매했다.



'주말에 갑자기 열린 프리 마켓 :) 좋고 싼 물건이 많아서 충동 구매를 했다. 내가 산건 작은 가방, 비치숄, 티셔츠, 비키니 상의(주황색!)'


2) 용클포차가 없었다면 난 대체 무엇을 먹었을까

3박 4일동안 먹었던 음식들..

라면만 종류별로 먹고 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 식당이 있어서 밥! 을 먹을 수 있었다. 

없었다면 아마 MSG에 찌들어서 왔겠지 ㅠㅠㅠ


서프스타의 장점은..회원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런지 저녁은 다 같이 우르르 먹는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저녁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분위기가 생기는 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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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외식을 제외한 모든 식사는 4천원 :) 따로 음식을 싸 가지 않아도 주방에서 만들어 주시니 참 좋다. 용클포차에서 나오는 음식들인데..아마 여름 한정으로 운영되는 거겠지? 가까운 곳에 식당이 없어서 포차가 없다면 음식을 가지고 다녀야 할꺼다 아마..'


3) 모래 놀이도 빠질 수 없지



4) 서프스타 대표 미녀! 롤코의 애교도 감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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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뭘 찍어도 화보가 되는 서프스타를 감상한다. 

'초록색 크레파스로 그린 듯이 서 있는 서프스타. 나무로 지어져 있어서 그런지 따뜻한 느낌이 있다.


'더 가까이에서 찍어 본 모습…언제라도 바다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광경이다'


'무궁화 동산에서 서프 스타로 들어오는 입구 :)'


'가만히 있어도 알록달록 예쁜 보드들이'



'서퍼와 강아지가 지나가는 순간 확! 살아난다.'


'저! 뒤로 보이는게 전부 다 렌탈 보드다. 키핑 보드 보관함은 뒤쪽에 따로 있음…날씨 좋을 때는 모닥불도 피워 놓고 빙 둘러않아 얘기 할 수 있다고 한다. 까맣게 보이는 모닥불 자리'



'서프스타 샢도 빠질 수 없지…온라인에서 그렇게 찾아도 없던 워터 레깅스가 여기에는 다 있더라..주문제작 수트도 받고 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을 여기서 사면 될듯'



미모 대표 롤코가 있다면 듬직함 대표 헹텐이가 있다.'



'해먹에 누워서 낮잠을 자기 직전'



'뜨거운 태양 아래 보드를 손질하느라 바쁜 두 분..'


'몇몇은 바다로 나가고..'



'망망 대해를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건물과 깔맞춤한 바람개비'


#4. 시계가 없는 곳

서프스타에는 건물 밖에 시계가 없다. 벽에 걸려있는 거라고는 온도계 뿐이다. 

시간이 중요하지 않은 곳.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했는데(사무실에서는 당연한 듯이 시계가 걸려 있고, 미팅 시간이나 회의 시간이나 모든 일이 시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몇 일 지내다 보니까 그 시간에 대한 무관심이 너무나 고마웠다. 


구지 서핑을 하지 않아도 서핑보드를 끌고 나가 바다에 누워 있거나, 태닝을 하거나 바다를 감상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는데.

귀를 간질이는 파도 소리에는 노래가 따로 없고, 강아지와 고양이와 놀고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으니 이보다 완벽한 휴식이 있을까.

여행은 새로운 장소에 나를 던져놓는 일이라고 헀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사회적인 지위나 배경 없이 온전히 나 하나로 노출되는 이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거기서 진짜 자유가 오는 게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이 곳을 한 번만 가기에는 너무 아깝겠지.

주말이 이틀밖에 없는게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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