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가 보고 싶어서 훌쩍 떠난 여행. 

운전 초보지만 시내가 아니면 몇 시간이든 운전할 수 있다. 거리랑 운전 시간만 길다 뿐이지 하는건 똑같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강남역이나 압구정처럼 길도 좁고 차도 많은(특히 택시! 버스!) 곳은 가기 싫다. 무섭다.


운전을 할 수 있다는건, 가고 싶은 떄에 갈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더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역시 여행은 누구랑 같이 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다못해 혼자 가는 여행이라고 해도 여행을 가는 '내' 마음이 어떤지가 가장 중요하다. 

혼자가 아니라 나랑 가는 여행이니까.


왜 절은 산 높은 곳에 있을까. 

소원을 빌거나 공양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은 높은 산이 만만하게 느껴지는 청년시기를 훨씬 지났는데. 계단 하나를 두 발로 밟으면서 하나하나 오르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이제 여기까지 왔으면 많이 온 거니 그만 내려가서 쉬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올라온 꼭대기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부처상 앞에 절을 드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눈치 없이 나를 따라온 바람만이 소원종이를 주책스럽게 때리고 있었다. 

부처님을 등지고 보면 산 아래로 넓게 펼쳐진 갯벌과 바다가 보인다. 갯벌 안에서 부지런히 살고 있을 게, 벌레, 물고기가 생각나서 괜히 기분 좋아졌다. 내가 바라본 부처님은 엉엉 엎드러 울고 싶을 만큼 자비로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뭐든 들어줄테니 다 말해보라고, 그리고 여기서 훌훌 털고 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 눈물 쏙 빼게 만드는 부처님보다 개당 3만원 짜리 소원종이나 1년도 살지 못할 바다생물들이 더 좋다. 더 사랑스럽다. 더 가까히 있고 싶다.

나도 부처님이나 하나님이나 아무튼 어떤 님을 찾을 때가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삶이 너무 무거울 때에 그분들을 찾으면 된다. 돌아온 탕아에게 하셨던 것처럼 자애와 사랑으로 나를 보듬어 주실테니까. 그래서 나는 힘들때만 그분들을 찾고 행복할 때, 건강할 때는 나같은 미물들에게 관심을 더 가지기로 했다. 이기적이어도 괜찮겠지. 신이잖아.


짜지 않고 담백한 간장게장을 먹었다. 밥이랑 비벼 먹으니 맛있었다. 게장이지만 '게'가 빠진 '장'만 따로 구해가고 싶었다.

좋은걸 먹으면 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마다 사랑의 증거가 다르지만 나는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들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어렸을 때는 나 빼놓고 놀러갔다오는 엄마 아빠가 지역 특산물을 사서 다음날 반찬으로 내주는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모르는 뿐더러 낯선 반찬이 먹기 싫다고 징징댔다. 통째로 먹는 꽃게나 명란젖이나 인삼구이같은건 지금도 어색하다. 그래도 그 마음은 알 것 같다. 다 커서야 이런걸 알게 되서 억울하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덜 상처줬을껀데, 더 사랑했을텐데. 아무리 미워하고 화내고 싫어해도 헤어질 수 없는 딱 하나의 관계는 가족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더라도 가족에게는 사랑받으려고,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가족이니까'라는 말은 얼마나 무능한 변명인가. 


요즘은 어디를 가도 못난 나랑 함께 다니는 것 같다. 


도로 여행
2016. 1. 2. 11:51 AM
소요 시간 2h 52m 10s , 거리 22.8 km
-작성자 ehdalehdal, 출처 램블러
    
          
          
▲ 소원 리스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소원.          
▲ 보문사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으니까 산에 올라오는 보람이 있다. 역시 좋은건 거저 오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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