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애니메이션이라면 일단 평타는 친다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스에이지'나 '미니언즈'처럼 이상하게 꺼려지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주토피아'를 보는 내내 주인공의 보숭보숭한 털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걸 보면 그냥 털이 많은 동물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가 13년만에 나온 니모 아빠 말린의 친구 도리를 주인공으로 한 '도리를 찾아서'를 보러 갔다. 

2.  
도리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영화 시작부터 도리는 말한다. 
'나, 단기기억상실증 앓고 있는 여자야' 영화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고 도리는 가족들을 잃는다. 처음에 물고기가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게 어색해서 적응이 안 되어었다. 아니, 물고기도 저런 친자 개념이 있나? 알 낳으면 그 위에 정자를 뿌려서 수정을 시키는 방식인뎁쇼?

3. 
난 이 영화를 보기에는 너무 많이 컸다. 
물고기가 어떻게 부모님이 있어? 클라운 피쉬랑 블루탱이 대서양을 건너 캘리포니아로 간다고? 블루탱의 수명이 어느 정도지? 어떻게 부모님이 살아 있을 수 있는거지? 서로 다른 종끼리 대화가 통할 수 있나?(바다표범과 니모 부자의 대화) 같은 의문증 때문에 영화가 주는 메세지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어서 끝나고 검색해서 찾아봐야지...하는 생각에 내 머릿 속 질문 리스트를 늘려 가기 바빴다. 

주디...귀...날가져...하악


4. 
심지어 이런 내 이성의 끈을 놓을 정도로 도리에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다. 툭하면 까먹고 게다가 말도 많고 의욕도 넘치고 뭐든지 자기 위주로 생각하다 주변 사람들 걱정시키고. 정말이지 민폐 캐릭이다. 심지어 본인은 태평하다. '주토피아'의 주디도 나름 의욕넘치는 민폐 캐릭이지만 본인의 신념을 위해서 노력하고 희생하는데, 도리는 막무가내가 그저 전진, 전진만 있다. 

5. 
이것 뿐만 아니라...
수족관에서 살고 싶다는 행크한테 바다로 가자고 바람을 넣고(행크는 무력으로 도리의 꼬리표를 뺏을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도리를 도운 험악하게 생겼지만 마음은 착한 문어다) 죽을 지도 모르는 여행에 니모와 말린을 휘말리게 한 다음에 부모님을 찾을 때까지 니모와 말린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내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애초부터 친구 하지도 못했을꺼야...나를 까먹을 지도 모르는 사람(물고기)와 어떻게 관계를 맺지..

6. 
그럼에도 도리만이 줄 수 있는 교훈이 있어 좋았다.(그래, 단기 기억 상실증은 죄가 아니다. 미워하지 말자) 워낙 잘 잃어버려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안전한 곳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안그러면 진즉에 죽었겠...) 아무것도 없는 물보다는 해초쪽이 낫지, 하면서 하나씩 위험 요소를 피하는 도리의 판단은 패닉 상태에서 바이블로 써도 될 만큼 이상적이다. 나한테 아이가 있다면 영화 끝나고서 '도리 식 위험상황 대처법'을 알려 주었을 것 같다. 

7. 
물고기가 물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고작 다이빙을 20번 정도만 한 초보 나부랭이 다이버지만, 물 속에 들어갈 때마다 바다 속이 무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호, 물고기, 해초 등 뭔가 움직이는 것들을 보러 10kg짜리 장비를 들쳐매고 바닷 속을 방문한다. 고작 30분 안팎의 다이빙 동안 부지런히 헤엄치고 눈 속에 그것들을 담는다. 

8. 
모험이 끝나고 돌아온 집에서 '난 경치를 보러 갈꺼야'라고 말하며 도리가 헤엄친 곳은 절벽의 끝. 
물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수면 위에서 커튼처럼 내려오는 빛줄기를 보며 도리는 말한다. 'unforgettable'하다고.

9. 
다이빙 하러 가고 싶어졌다.
꼭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만 횡설수설하는건 아니다. 나도 횡설수설. 기승전 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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