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에콰도르 시간으로 오후 5시 46분.


수영장이 있는 숙소라고 좋아라 했는데, 쌀쌀한 날씨에서 수영을 하니까 이렇게 덜컥 감기에 걸려버렸다.
역시 나는 수영장 딸린 숙소는 맞지 않나봐 ㅠ 수영장 딸린 집을 가지는 것도 포기해야 겠군...
그래서 오늘도 띵가띵가. 내 생활반경 범위는 5m 이내.
침대, 화장실, 정원, 부엌.

다행히, 아주 다행히도 숙소에 무선 인터넷이 잡힌다.
무선 인터넷을 사랑하는 나 때문에 내 노트북은 어제부터 잠을 자지 못 했다.

하는 일이 없으니까 생각이 많아진다.

워크캠프 신청서도 써야 하고, 사진 보정도 하고 싶고, 밀린 일기에 항공권 조회까지.
머릿속은 복잡한데 몸은 움직이질 않는다.
아프다는 핑계로 이렇게 딴짓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말을 해 주는 웹사이트보다 내가 사람들에게 말 하는 공간인 블로그에 들어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탓에  
아침부터 그 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쭉 돌아봤다.

나한테 소중한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그 옛날 이유는 모르지만 속상해서 적었던 글 들(물론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 내가 관심 있었던 것, 좋아했던 것, 싫어했던 것
그리도 지금



지금 나는 떠돌아 다니고 있다.
한 때 가장 가지고 싶었떤 게 '집'이었을 정도로 이거, 매일매일 집을 바꾼다는 거 보통일이 아니다.
시작은 인도였지, 아시아, 중동, 유럽, 남미를 거쳐 이제 2주일 뒤면 중미로. 그 다음에는 북미로.
얼마 안 남았다. 떠돌아 다니는 인생도.
이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하다. 이제 다음 도시 숙소를 알아보지 않아도 되는 건가? 이제 그 나라 음식에 적응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5불당' 이라는 다음 카페가 있다.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 가입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물론 나도 여행 오기 전에는 여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루트 짜는 것 부터 해서 마음가짐 까지.
물론 여행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다. 가슴 뛰게 하는 사진들, 글 들. 나도 꼭 따라하고 싶어지는 경험들.

그런데 지금 여행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그때의 동경이 지금은 생경함으로 다가온다.

어? 저기에서 저런걸 했었네?
페루에서 현지인들과 사이좋게 지냈었네?
각 나라마다 동영상을 찍어서 만들었네?
사진을 참 잘 찍었네?
등등




부럽다.
나도 저기서 저런 걸 해 볼껄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하지 못한 게. 내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게으름 때문인 것 같아 나한테 미안한 마음도 든다.
편생 다시 못 올 기회. 이렇게 빚까지 내서 왔지만 온전하게 쓰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남들 다 인정해주는 멋진 영상이나 사진을 찍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덜 미안해졌으면 좋겠다.
머리와 몸의 비중을 바꾸고, '이 나라도 볼 거 없겠네', '어차피 다 그런거야.' 라는 마음을 지우고, 좀 더 새롭게, 즐겁게.
내가 즐거울 일을 찾아 떠나자.
어차피 사는 게 다 그런거 같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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