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비행기를 타려고 게이트로 가는 길. 공항에서 찍은 사진


곧 다가오는 2011년 12월 8일은 제가 여행을 다녀온지 꼭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저는 어느덧 한국에 적응을 하고 취업까지 했네요..이제 학생 끝입니다. ㅠ

아마 많은 세계여행자들이 그렇겠지만, 저 또한 여행을 다녀 온 뒤의 삶과 여행을 가기 전의 삶을 많이 비교해요. 
그 만큼 저의 9달의 기억들이 제 인생에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가족들이랑 외식을 하다가 엄마가 갑자기 저에게 물으셨어요
"너 여행 다녀온게 취업에 많이 유리하게 작용했니? 엄마 주변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더라"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번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세계여행이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시기는 2009년 봄. 저는 그때 22살이었고, 5학기를 마친 상태였어요. 그리고 휴학을 한 채 국내 한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희 팀에 계시던 컨설턴트 언니가 그 전 해에 세계여행을 다녀 오신 분이었어요. 그리고 그 언니의 동생분도 똑같은 루트는 아니지만 세계여행을 다녀오시고 성균관 대학교 앞에 작은 게스트 하우스를 꾸려서 운영하고 계셨어요. 주말마다 그 게스트 하우스에 놀러가고 스텝으로 일 하면서 많은 여행자를 만나고, 또 언니와 오빠의 여행 얘기를 듣다 보니까 세계여행이라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저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생활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게 내 인생에 큰 자산이 되든,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추억이 되든간에 멋진 일이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학생일 때가 아니면 그렇게 모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함도 들었어요. 지금은 내가 가진게 많지 않아서 잃을 것도 없지만, 나중에 직장이 생기고 가정이 생기면 내가 이렇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아마 이게 내 인생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인턴을 하면서 세계여행이 만만해 졌다면, 인턴이 끝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내가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테스트 해 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태국을 여행 해 보기로 했어요. 중간에 보름짜리 워크캠프도 넣어서 약간의 안전장치도 마련 했습니다. 쌩짜로 혼자 다니는건 자신이 없었거든요. 어설프게나마 한 달 짜리 여행으로 세계여행의 예행 연습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떠난 태국 워크캠프에서도 세계여행 중인 분을 만났습니다. 저와 같은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계셨는데, 2주 동안 진행되는 봉사활동 동안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원래 그 분 성격이었는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시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때 제 생각으로는, 그런 성격이나 습관도 모두 세계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생긴 것 같았어요. 여기서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건 아니랍니다. 당연히.

한 달 짜리 여행으로 예행 연습도 했겠다. 큰 문제만 없으면 혼자서 반년 이상 싸돌아 다니는 것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어요. 이제 현실적으로 세계 여행 계획을 짤 시기입니다. 여행을 떠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내가 얼마만큼 필요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지 냉철하게 생각 해 봐야 해요.


일단 돈. 
언제나 중요하지만 여행에서는 더욱 더 중요해 집니다. 저는 다행히 2009년 봄에 인턴을 시작하면서 부터 돈이 들어오기 시작 헀어요. 인턴을 하면서 동시에 과외를 3개 정도 병행하고, 기타 학교에서 진행하던 자잘한 장학금이나 이전에 모아뒀던 돈을 합쳐서 얼추 예상 자금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글로 적으니까 참 별거 아닌거 같은데, 당시에는 주말마다 16시간씩 과외하고, 장학금(=돈) 받으려고 공부도 엄청 열심히 했어서 그 당시 저의 생활은 피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무작정 돈을 모은 다음에 거기에 맞춰서 루트를 정하는 식이었어요. 대충 4대륙을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2000만원 가까운 돈이 필요할 것이라는 식으로 목표치를 정해놓기는 했지만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았습니다. 돈 떨어지면 집으로 오면 되니까요. 쉽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부모님의 허락.
돈을 모은 이유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어학연수라면 모를까, 생전 처음가는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1년 가까히 나가있겠다는데 선뜻 허락해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경제적인 지원은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고 돈을 모으는 것 이외에 부모님이 저를 믿을 수 있을 근거를 마련해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무지하게 했어요. 여행을 다녀 온 뒤에 밀려올 현실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학교 생활은 어설프게 하면서 대외활동에만 관심가지던 제가 믿음직한 사람이라는걸 보여 드려야 했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장학금이라는걸 받았었네요. 학점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올릴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행 계획.
먼저 책을 많이 읽었어요. 마침 다니던 학원 근처에 큰 서점이 있어서 틈날 때마다 여행 코너에서 어슬렁 거렸습니다. 대부분 자기자랑식의 에세이였지만 그 속에서도 얻을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시중에 있는 책들은 거의 한번씩은 들취 봤던 것 같아요. (물론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봤던 책 중에는 다음에 있는 유명한 세계여행자들의 카페 '5불당'에서 나온 <세계일주 바이블>, 좌충우돌하는 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아는 분께서 추천해 주신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다행히도 제 주변에는 장기여행을 해 보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 분들의 말씀을 많이 듣기도 했지도 다들 한결 같으셨어요. '여행은 뭔가를 얻고 오는게 아니라 뭔가를 버리고 오는 거더라', '너가 힘들면 돌아와도 돼. 무리하지마' '사람을 믿어, 그게 여행을 행복하게 해 줄거야' 나중에 이 말들이 여행 중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순간에 저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세계여행이 취직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봐 주겠지?'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물론 이건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단순히 취직에 도움이 되려는 생각만으로 그 수많은 고독의 시간을 견딜수는 없어요. 
우주에 나 혼자만 떨어져 있는 그런 기분. 
취업 시장에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가는건 세계여행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제가 여행을 준비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뭘 포기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그런 시간. 
세계여행만 열정이 아니라 일년 동안 꾸준히 목표를 향해서 달려갔던 그 시간또한 열정이에요. 

세계여행은 자기소개서 쓸 수 있는 충분한 소재를 만들어 주지만, (여행 중의 에피소드, 혹은 여행 그 자체)
최종면접으로 올라가면 다른 측면에서 접근 합니다.
거기서는 세계여행을 흥미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철저히 이성적으로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를 봅니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에게는 한달 짜리 여행이든, 삼년짜리 여행이든 다 똑같은 취급을 받아요. 오히려 공부 안하고 놀러 다녔다고, 혹은 부모님 고생 시키면서 다녔다고 나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중요한건 얼마나 오래,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얻었는가. 철저하게 output중심이에요. 면접이 그렇습니다. 

지금, 세계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 중에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계획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평생 동안 나의 전 생애를 걸쳐 영향을 끼칠만한 대 사건이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되기에는 아깝지 않을까요?

23살에 떠난 세계여행은 내가 얼마나 어리고 멍청하고 화 잘내고 다혈질이고 잘 울고 쪼잔하고 더위를 잘 먹고 잠이 많고 소심한 사람인지 알게 해 줬지만,  
반면에 의외로 긍정적이고, 침착하고, 아이들을 좋아하고, 생각보다 현지인들과 말을 잘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알고, 마늘이랑 닭만 가지고 삼계탕을 끓여 먹을 수 있고, 바다를 사랑하고, 궂은 일을 싫어하지 않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는걸 알게 해줬어요.
 
여행은 여행 그 자체로 즐길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여행은 무언가를 얻으려고 가는게 아니라 버리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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