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기 중에는 누가 봐도 훌륭한 외모와 신체 조건을 가진 오라버니가 한 분 계셨다.(과거형인 이유는 이 분이 지금은 퇴사했기 때문) 언제 어디에 있어도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던 그는 입사 전에는 작은 물류업을 하면서 사업가의 삶도 살아 봤다고 했다. 어느 겨울, 아직 대학생 티를 벗지 못한 동기들의 모임에서 혼자 무릎까지 오는 쥐색 투버튼 코트를 입고 감색 목도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의 옆모습은 자기 삶을 분명하게 살아가는 멋진 청년. 딱 그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다고 했을 때 느꼈던 의아함이 아직도 생각난다. ‘나답게 살고 싶어서 그래’였었나, 떠나기 전 나에게 말했던 오빠의 ‘퇴사의 변’이다. 사실 그건 의아함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선택한 회사도 그에게 결국 만족을 주지 못했구나…같은, 직업 선택의 어려움을 새삼 느꼈달까. 

직업은 어떻게 고르게 되는 것일까.
내 경우에 나는, 현실과 이상을 맞춘 중에 최상의 선택을 했다. 나의 현실은 혼자서 돈을 벌어 나와 내 배우자, 그리고 내 새끼까지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급여였으며, 나의 이상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회사를 선택 하다 보니 현실로는 대기업만 걸러졌으며, 이상으로는 회사의 업종이 가려졌다. 심플하게 정한 것 같지만 다른 모든 취업준비생과 마찬가지로 그 선택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대학생이었던 내 뇌 속에는 매우 한정적인 직업에 관한 정보만 있었다. 아무리 학교에 있는 취업지원센터를 다녀봤자 그것도 이미 한번 걸러진 업들이 아닌가?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는 이제 막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시점이었다. 때문에 나름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을은 여행후 나는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음과 동시에 모두가 똑같은 만큼의 삶을 산다는 생각만 굳어졌다. 뭐라고 할까. 나무 도감을 읽은 내가 창문 하나 짜리 방에서 살다가 창문 열칸짜리 방으로 이사를 왔는데, 열 배로 많아진 풍경 중에 내 눈에 띄는 건 여전히 나무 뿐이었달까. 조류 도감을 봐야 새가 보이고, 식물 도감을 봐야 꽃이 보이는데 내 눈에는 그런게 안 보이는거다. 

그렇게 직업을 고르고 나서, 그 일은 한지 벌써 4년째다. 한 차례 승진을 했고, 회사에서 주는 혜택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맨 처음 이 업을 고를 때 했던 만큼 치열하게 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다. 왜냐고? 안 해도 되니까. 그런거 안해도 월급 나오고 일하는데 지장 없으니까. 필요하지 않으니까 안 하는거다. 경제위기다 구조조정이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폭풍이 나한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없는 오만함과 주어진 일 이상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게으름이 합쳐져서 나는 그냥 살고 있었다. 

배우 최민식의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을 보고나서 업에 대해 다시 생각을 했다.지금도 여백을 찾고 있다는 노배우의 한문장이 가장 가슴에 왔다. 이 여백은 어느새 오만해진 나에게는 희망과도 같은 말이다. 내 오만함이 아직 채우지 않은 부분이며 동시에 내가 원하는 바로 채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만약 내가 여백을 잃어(혹은 잊어)버렸다면, 누군가가 내 여백을 일깨워 주었으면 좋겠다. 내 순수한 마음과 생각을 기억해주고, 내 고민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가끔씩 고독해지는 일은 없을텐데. 지금은 이렇게 여백을 느끼는 순간의 나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게 내가 내 생각을 이 공간에 쓰는 이유니까.
이놈의 일은 끝이 없어야 한다.

뱀발.
“당신은 왜 이 일을 하십니까?"
동기 오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람들에게 물으며 다닌 단 하나의 질문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은 늘 새롭게, 항상 다잡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결과물은 아래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