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포스팅 했던 주제지만, 지난 9월 부터 에세이 쓰기 모임을 나가고 있다. 

얼마 전, 총 6회의 참석을 마지막으로(총 6편의 글을 토해냈다) 이번 기수는 야무지게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부터는 자유 참석제로 운영된다니 더 많은 사람들의, 더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총 3시간동안 진행되는데, 필사 1시간, 작문 1시간, 작문에 대한 비평 1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작문의 주제는 각자가 필사한 책의 소제목을 그래도 사용한다. 나는 거의 내가 필사한 책의 소제목을 인용했다. 필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그런지 글감도 금방 나오더라. 처음 2시간은 칼같이 지켜지지만 비평은 참여 인원이 많거나 할 말이 많은 경우에는 더 길어지기도 한다. 덕분에 나의 목요일은 녹슨 나의 좌뇌가 모처럼 가동하는 날이다. (필사 관련 내용은 예전 포스팅 참조 2016/09/25 - [나의/일상] - 필사의 즐거움)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서 에세이를 써서 무엇 하나 싶지만, 의외로 이 '무엇하나'를 잘 하고 싶어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에세이라고 말해서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일기나 진배없다. 쫄바지가 아니라 레깅스라고 하면 좀 더 있어 보이는 것처럼. 

일기 쓰는게 뭐 어렵나 싶지만 이게 초등학교때 썼던 그림일기를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런거...요즘 쓰고 있는데 참 재미지다)

어디서 좋은 건 많이 봐서, 괜히 나도 그렇게 멋진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내 글을 보고 남들이 좋아요 한 번이라도 더 눌러 줬으면 하는 게 사람 심보다. 안 그래도 세속적인 욕망이 철철 넘치는 나 같은 인간은 처음에 겉멋들린 글쓰기를 한다고 쓴 소리도 많이 들었고, 내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30년 평생동안 읽고 들은 단어들을 기억해낸다고 진땀깨나 흘렸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남의 글을 평할 때였다. 

글을 쓴 다는 건 자기 속살을 보여준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더욱이나 에세이처럼 주관이 잘 드러나는 글은 특히 그렇다. 내 속살을 보여 주는 것 만큼이나 남의 속살을 보고, 심지어 그 살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곤욕스럽다. 허나 살과 글이 다른 점은 글에는 더 나은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최대한 '화자'라는 표현을 써서 내 눈 앞에 있는 글쓴이의 살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도 그 마음 안다. 명치 위에 뭔가 단단하면서 간질한 것이 있는데, 그걸 사진으로 찍을 수도 없고 노래로 부를 수도 없어서 펜을 집어들었을 때의 막막함을 안다. 글 쓰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바라는게 그거다. 사람들이 내가 느끼는 것을 같이 느껴주길. 그리고 나도 모를 이 감정을 내가 알기를. 

뭐 하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세상. 가끔씩 외로워지는 이 마음을 설명하는 방법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글쓰기라는 것이 다행이면서도 아득해 질 때가 있다. 

적어도 에세이 쓰기 모임을 하면서 이 아득함을 많이 덜었다. 

내가 아무리 엉터리로 글을 썼다고 해도 그걸 고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약간 구차하지만 부연설명을 해서 글쓴이의 의도를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 이 두 가지만으로도 매 주 목요일 나의 3시간은 의미 있었다. 

모든 글쓰기의 첫 번째 독자는 나니까. 앞으로도 나의 첫번째 독자를 위해 글쓰기를 연마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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