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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5 까지 나온 만화책 <유리가면>에는 '마야'라는 소녀가 나온다. 평범한 외모에 특출 난 하나 없지만 마야는 연극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보여준다. 연극의 막이 올리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을 잊고 배우에 100% 몰입하는, 말하자면 배우와 배역의 완전한 일체를 있는 배우인 것이다. 같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모든 연기 잘하는 연기자들은 배역에 완벽히 몰입하는 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도 사람이라. 정해진 대본을 읽는 연기자가 연기를 하는 도중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완전히 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노련한 연기자의 이상적인 모습은  '나는 지금 연기를 한다' 자신을 담금질하는 것이지 완전하게 동화되는 것이 아니다.

 

마야는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그래서 매력적인 연기자의 이상이다. 자신을 완전히 잊는다? 그것은 극에 완전히 몰입을 했을 때에만 얻을 있는 열매다. 하지만 신은 열매를 얻으려면 평생을 일구어 자아를 잊을 것을 요구한다. 버려라, 그러면 얻을 것이니. 이것은 니나가 자신을 버리고 백조를 얻은 이야기다.

 

니나는 발레리나다.
그녀는 발레리나라는 단어가 대중에게 주는 모든 시각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가느다란 몸매와 조막만한 가슴, 지하철에 앉아 있을 때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는 모습, 머리카락 올도 허용하지 않고 완벽하게 묶은 머리.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뉴욕 발레 시어터에 들어간 모든 발레리나에게 해당되는 수식어구다. 어쩌면 니나의 불안함도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일 있다. 선배 발레리나를 제치려는 마음, 나보다 잘난 경쟁자를 쓰러뜨리려는 마음. 어차피 주인공은 명인 세상이니까. 집에서조차 커다란 거울에 둘러싸여 있는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끊임없이 관찰하고 다른 사람을 관찰한다. 내가 위로 올라가야 , 내가 최고가 되어야 . 응고된 스트레스는 섭식장애, 손톱 뜯기, 할퀴기로 나타나지만 그래도 정도 까지는 괜찮다고 있다. 그녀는 발레리나니까.

 


니나는 불안하다.
엉겁결에 얻은 백조의 여왕 자리에 자신이 완벽하게 들어 맞지 않을 까봐. 모두가 원하는 영광의 배역을 손에 넣은 뒤에도 그녀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이제 라이벌은 없다. 동경하던 선배도, 신경 쓰이는 라이벌도 객관적인 위치에서는 확실히 자기보다 아래에 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요동친다. 그녀의 불안은 근원적이다. 어쩌면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안고 있는 숙명일 것이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남과 비교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그렇게 느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변한다. 생각이 강해질 수록 그녀는 변해간다. 몰래 숨겨두고만 있던 마음이 하나 둘씩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공격성, 성욕, 파괴본능. 정점에서 극의 막이 올랐다.

 

발레 장면은 지금까지 보여준 니나의 모습의 축소판이다. 사라지지 않는 불안과 부담감, 갑자기 나타난 본능, 그리고 완벽에의 도달. 시간 남짓 했을 발레 공연을 마친 만으로 니나의 인생 전부를 있다. 원래의 결말은 감독이 니나를 '나의 작은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랬다면 영화는 관객에게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논리력까지 잃어버린다. 니나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칭찬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감이니까. 끝은 이렇게 나야.

 

영화는 < 레슬러> 만든 감독의 것이다. < 레슬러> 사람이라면 사실 마디 만으로 <블랙스완> 이해하는 데에 충분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우연히 서로 다른 시간, 장소에 태어나버린 쌍둥이다. <블랙스완> 마음에 들었다면 < 레슬러> 놓치지 말자.

 


(왼쪽이 한국판, 오른쪽은 미국판 메인 포스터)


P.S. 우리나라에 배급된 <블랙스완>의 포스에는 '흑조를 탐한 백조의 핏빛 도발!'이라고 적혀있다. 다소 괴기스러울 수 있는 미국판 포스터 대신 스타성을 가지고 있는 나탈리 포트만의 예쁘장한 얼굴을 선택한 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문구가 너무 유치하다. 이게 뭔가, 느낌표까지 넣은 바탕체라니.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흑조를 부러워한 백조가 흑조를 죽이는 얘기인 줄 알겠다. 차라리 '발레리나의 욕망' 또는 '광기' 같은 문구가 훨씬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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