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과 골수암에 걸린 남자가 바다를 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

 

같은 2인실에 입원하는 남자는 원래대로라면 절대 친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금연 구역 표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담배를 대는 자유분방 도덕 불감자 마틴. 지하철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전화를 받는 것도 모자라 내릴 역이 아닌데도 내려서 플랫폼에서 전화를 받을 같은 살아있는 윤리 교과서 루디. 하지만 둘은 그렇지만 ' 골수암이야? 나는 뇌종양인데. 우리 죽게 생겼네?!' 하면서 가볍게 연대를 구성한다. 서로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거리낄 것도 없다.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으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라 것도 없이 술에 취한 마틴이 뱉은,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마디는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를 움직이게 한다. 그것도 그냥 움직임이 아니라 대형 사고로.

 

이야기는 착하게 마지막 목표만을 향해 달려 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들은 목적을 얻기 위해서는 30 살아오면서 익혀온 모든 규정을 무시한다.

 

꺼야? 이제 죽을 건데 잠깐 빌려가도 되지?

우리 없는데? 은행은 많으니까 우리한테 주지 그래?

 

범퍼카처럼 여기 쿠당, 저기 , 하면서 달리는 통에 뜻밖에 길동무가 많이 생긴다. 마피아와 경찰 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이상 많은 여행 동지를 이끌고 다니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 정도밖에 없을 거다.

 

영화를 보면 인생도 이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죽는다. 바다가 죽음과 동의어라면 바다를 향해 전진하는 주인공 처럼 우리들 모두 이리 , 저리 , 하면서 살고 있는 아닐까. 아일랜드의 극작가 소설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이런 인생의 깨달음을 문장으로 정의한다. '우물쭈물 하다가 이렇게 알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보면 바다를 보러 가는 남자의 모습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바닷가에서 증세가 점점 심해지던 마틴은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전에도 번을 쓰러졌지만 이번에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틴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을 아는 , 살아있는 동안에 마지막으로 사귄 친구 루디는 바다에 눈을 고정시킨 동요하지도 않는다. 철썩거리는 바다의 모습 뒤로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 흘러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와 동명의 주제곡인 knocking on heaven's door 하지만 영화에서 음악은 이상이다. 옥수수 밭을 가로질러 도망가는 신에서 난데없는 슬로모션과 함께 나오는 사랑스러운 배경음악, 마틴이 엄마에게 분홍색 캐딜락을 선물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불렀음직한 달달한 기타곡이 나오는 것도 영화의 별미다. , 처음에 카바레에서 나오는 I'll survive 먹을 없지.

 

사실을 하자면, 주인공은 결국 마피아에게 붙잡힌다. 루디의 소원 때문인데 바른 생활 청년 루디한테는 어울리는 소원이었기는 하지만 죽기 전에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데 , 그냥 넘어가주자. 그렇게 끌려간 마피아 두목 앞에서 사람은 바다를 보러 가는 길이라고 얘기를 한다. 시종일관 얼굴의 1/4 검은 그림자를 띄고 있던 마피아 두목.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그렇다면 뛰어, 바다를 보러 가야지.

 

정말 천국에서는 바다 이야기만 걸까.

그렇게 된다면 죽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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