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유
국내도서
저자 : 조조 모예스(Jojo Moyes) / 이나경역
출판 : 아르테(arte) 2016.05.20
상세보기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이 낯설어질 정도로, 슬퍼했던 과거가 무안해질 정도로 행복해질꺼라는 사실을.

내가 영화(2016/06/12 - [[리뷰] 다시 생각하다/영화] - #3. [미 비포 유] Who I was before I met you) 속에서 본 루이자는 눈물보다는 미소가 어울리는 아름답고 밝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약간 삐딱하게 보고 있었다. 어차피 행복해질꺼 다 알아. 그러니까 궁상떨지말고 빨리 결말을 향해 달려가란 말이야. 이래서 내가 소설이 싫다니까 뻔한 결말 내면서 사랑입네 눈물입네 구구절절 읊어대는 로맨스 소설은 더더욱 말야. 

초반부 루의 슬픔은 굉장히 공감가지만, 그녀가 결국에는 근사한 남자친구를 만나 새로운 로맨스를 만들 것이라는걸 아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그냥 징징거림으로 보일 뿐이었다. 

남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고 중얼거리거나

뜻밖의 행운에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줄 알고 찾아간 파리에서 어느날 아침에 문득 그 도사와의 사랑이 끝나 버린 것을 깨달은

것 쯤이야 예정된 절망이었다. 그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도시에서 다른 사람을 살 용기도 배짱도 없는 루가 이방인이 되는건 당연한 일이다. 

마음껏 슬퍼하고 새 남자친구에게 행복해 하는 루 보다는 갑자기 튀어들어온 이방인, 
릴리가 나를 사로잡았다. 

16살이 저렇게 불안한 나이였나?
하고 돌이켜보면 나는 두 명의 지속적인 양육자가 있었음에도 소속되지 못했다는 마음에 세상을 둥둥 떠돌았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용서 받었고 지지 받았다. 사춘기니까 그래. 사춘기 지나면 괜찮아져. 하고 내 증상을 일시적인 바람으로 느껴 준 두 분 덕분에 인생의 위험한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될 수 있었다. 끔찍한 기억 없이. 

릴리는 지속적인 양육자도 없는 데다가 가장 가깝고 지지해야 할 친모는 릴리를 귀찮아 한다. 동생들은 남보다 더 멀고 집은 슈퍼마켓보다 더 정감이 가지 않는다. 릴리의 마음을 이끄는 건 이미 죽은 친아빠, 혹은 엄마와 이혼한 예전 아빠 뿐이다. 

왜 이 소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빼앗길까. 생각해보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사랑을 받고는 싶지만 정말 사랑을 받으면 버림받을까 두려워 신뢰보다는 실망을 먼저 표현하는 이 거친 아이를 나는 완전히 이해한다. 이건 애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릴리처럼 살아온 아이가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기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까. 

화목한 가정에서 무한한 지지를 받으며 자라온 루이자 만이 릴리에게 사랑을 퍼부어 줄 수 있다. 지속적인 지지와 신뢰, 인정을 줄 수 있는 건 결국 루이자가 그런 지지를 가족들 속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루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친부모가 아닌 부모 역할만 하는 사람인 경우에도 이 모든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 다른 사람을 먹여주고 돌봐주면 적어도 권위를 얻게 되지만, 이 경우에는 그조차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이라는 루의 절망스런 목소리가 와닿는 이유다. 

마음껏 사랑해봤자 버림받게 될 수도 있다. 온 마음과 시간과 금전을 동원해 지지해 주고서도 몇 달 뒤에는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혼자 남겨지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책은 묻고 있다. 
릴리가 좌절하고 방황하고 도움을 받고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루이자가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그렇게 그녀들은 계속해서 기대하고 좌절하고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게 될 것이다. 

아래는 베로니카 A. 쇼프트롤의 '얼마 후면'이라는 시다. 
맨 처음 릴리의 옥상 정원을 읽었을 때 생각나는 시. 
내가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마다 손에 꼭 쥐면서 필사하던 시다.

    After a While you learn                      얼마 후면 너는
    The subtle difference between                손을 잡는 것과 영혼을 묶는 것의
    Holding a hand and chaining a soul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And you learn that love dosen't mean leaning....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는 게 아니고
    And you begin to learn                       입맞춤은 계약이 아니고
    That kisses aren't contracts                 선물은 약속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And  presents aren't promises                 머리를 쳐들고 앞을 똑바로 보며        
    And yoy bigin td accept your defeats         소녀의 슬픔이 아니라
    With your head up and your eyes ahead        여인의 기품으로
    With the grace of a woman                    너의 패배를 받아들일 것이다.
    Not the grief of a child....                 얼마후면 너는 햇볕도 너무 쬐면
    After a while you learn                      화상을 입는 다는 걸 알게 된다,
    That even sunshine burns if you get too much
    So you plant your own garden                 그래서 누구가 꽃을 갖다주길
    And decorate your own soul                   기다리기보다는
    Instead of waiting                           너만의 정원을 만들어
    For someone to bring you flowers....         네 영혼을 스스로 장식하게 된다.
    And you learn And you learn                  그리고 한 번 이별할 때마다 너는
    With every goodbye you learn.                배우고 또 배우게 되리라.  
    Veronica A Shoffstall(1946 ~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