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트 버그만의 아름다운 얼굴
그 만큼이나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전경이 인상깊었던 영화
아, 왜 이탈리아 영화만 많이 보는거야 ㅠ 이탈리아 가고 싶다 ㅠ


음 남자친구를 사귄 것은 대학교 2학년이던 2007년 여름이었다. 열심히 인연을 찾으러 다닐 때는 인연의 기미도 보이지 않더니만, 멋모르고 신청한 국토대장정에서 생애 첫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친구들은 소중한 인연을 좋은 곳에서 만났다며, 땀투성이에 냄새 나는 모습을 이미 보았으니 너의 겉모습에 휘둘리지(그다지 휘둘릴 것도 없지만) 않는 진실된 인연을 만난 것이라고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농담 반, 진담 반인 친구들의 축하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땀투성이 모습을 보고 호감을 느꼈다면, 정상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는 실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지나친 의심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국토대장정이 끝난 후에 본격적으로 데이트를 할 때에 그런 징조들이 약간씩 나타났고, 불길한 예상이 적중했는지, 상대방은 힘든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모습이 좋았던 것일 뿐, 나라는 인간 자체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소위 콩깍지라고 불리는 이런 오해의 씨앗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는 상대방의 겉 모습 (외모뿐만 아니라 보여지는 것 전부), 낭만적인 공동 경험, 같이 있던 순간의 분위기 등으로 적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실 중에 하나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나 확신이 사실은 위에서 말한 콩깍지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실제 주변에도 마치 십대 소녀들이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듯이 상대방을 이미지만으로 머리 속에 가두어 두고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현상은 반드시 철없는 십대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충분히 성숙한 성인들에게서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 큰 어른들이라고 해서 이미지에 사로잡히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또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긍정적인 편견을 갖게 죄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이미지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 두 가지 현상의 공통점은 한 사람을 충분히 알지 않은 채,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의해 나 스스로 상대방을 쉽게 정의하고 이미지화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결혼 후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는 부부가 나온다. 이들의 결혼 전, 또는 결혼 이후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지만, 둘만의 시간을 어색해하는 모습에서 그 관계를 짐작 할 만 하다. 아마 이들은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던 듯, 그곳에는 추억이 있고, 오랜 친구들이 있었다. 호텔에서 짐을 풀자마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서로의 낯섦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피하는 수단이었다.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꾸기도 전에 나폴리로 이동하여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광을 하는 등 부부 모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고 피하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수록 문제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될 줄 알았지만,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관광을 할 때에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서로를 낯설어하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으며 그저 피하기만 하면 되는 얕은 웅덩이 같았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질투심으로 인해 웅덩이는 깊은 구덩이 되었고, 이 구성이는 둘 사이를 더욱 불편하게 하였다. 구덩이를 만드는 주된 원인은 불신이고, 불신의 원인은 질투다. 결혼 전의 서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서로가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한 채 살아왔지만, 이탈리아에서 떠오르는 서로의 옛 인연으로 인해 처음에 느꼈던 낯설음은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나폴리와 카프리 만큼 달랐던 여자와 남자는 짧은 별거를 시작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 영화의 주된 감정은 서로에 대한 질투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질투는 부수적인 요소로, 낯설음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할 뿐 본질은 아니다. 잊고 있었던 친구를 만나고, 잊고 있었던 성격의 차이가 드러나는 등 부부가 계속 엇 박자를 이뤄나가는 모습에서 영화는 사람 사이의 낯섦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사는 부부가 왜 서로를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질문은 올바른 질문은 아니다. 결혼은 관계의 한 형태일 뿐, 그것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보증수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는 어느 정도의 노력을 통해 발전해 나가야 한다. 부부라고 해서 그 둘이 영원히 오랫동안 사이 좋게 지낼 수는 없으며, 서로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두 부부는 지금까지 같이 살면서 한번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씩 보이는 모습, , 행동으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머리 속에 상대방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를 세웠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콩깍지이며, 낯섦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물론 영화 대사에서도 보이듯이 결혼 후에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결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버렸고 그 이후로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같이 살던 사람이 사실은 내가 생각하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부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계속 나아가는 것과 지금 이 자리에서 관계를 멈추는 것. 전자는 엄청난 노력을 수반할 것이며 성공의 보장도 없다. 하지만 후자는 문제를 덮어버리고 무시해왔던 과거의 절차의 완결 형으로서, 후자를 선택한다면 실패를 통해 나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차후에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둘은 전자를 선택하고 서로 나아가기로 한다. 후자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긍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 선택 또한 머리 속에 새겨진 상대방의 이미지에 집착하여 그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의 시도에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뭔가를 배울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 사람을 온전히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탈리아 여행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1953 / 프랑스, 이탈리아)
출연 폴 멀러, 조지 샌더스, 잉그리드 버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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