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초안을 작성하고 난 뒤에 감상문을 작성했었는데, 이번에는 큰 줄기만 가지고서 생각나는대로 쭉 쓴 다음에 글을 다듬었다. 어느 방식이 더 나았는지는 몰라도 후자는 조금 횡설수설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아 ㅠ
그래도 더 자유로운 상상력이 나온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점점 배우들의 외모가 출중해서 기분이 좋았다. +_+
특히나 남자주인공의 뒷태는 정말이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캠코더를 통해 본 적이있었다. 과자를 먹으면서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보아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다른 사람이 찍은 내 뒷모습을 봤을 때만큼이나 낯설고 부자연스러웠다. 그것인 내가 처음으로 대화하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겠지,아마도 나를 낯설게 만들었던 건. 그 장면에 나만 나왔을 뿐 나와 대화하는 사람은 뒷모습만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분명히 나는 대화를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보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 한 명만 보이는, 그 때 느낀 이질감을 오래간만에내 사랑 히로시마을 보면서 똑같이 느꼈다.

           대화는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소통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대화또한 상호간의 소통을 중시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처럼 고백적인 말을 할 때에 (여자와 남자 모두 자신의 과거를 상대방에게 털어 놓으며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대화는 단순히 상호간의 소통을 넘어선 교감, 그로 인한 치유를 기대하고있다. 마치 심리치료사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 상담자와 피상담자가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소통), 상대방의아픔에 동질감을 느끼며(교감), 궁극적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치유)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얼핏 보았을 때,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미로 영화를 해석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 하기에는 둘의 대화양상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처음에는 불어 번역상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자막을 전부 구해 본 후에도 내가 처음에 받은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대화 장면을 분석하는 것이 영화를 이해하는 큰 틀이 될 것이다.

 

           상대방은 보이지 않고 말 하는 사람만 보이는 동영상처럼,‘내 사랑 히로시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화 장면은 부자연스러웠다. 남자의 모습이 없어도 전혀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이야기는 주인공인 여자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유도하려고 하지만 남자는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 채, 여자의 말을 무시한다. 따라서 둘의 대화는 평행선을긋고, 그저 절정에 다다른 여인의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나서 바로 그 다음 날 아침에 그녀는자신이 도덕불감증이라는 이유를 대며 남자의 곁을 떠난다. 초반부만 본다면 남자가 여자의 말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무뚝뚝한남자 공감을 얻고 싶어하는 여자 의 대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가진행될수록 남자는 그저 무뚝뚝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영화초반부에서 보이는 여자 중심의 일방적인 대화 양상은 영화 후반부까지 이어지며 남자가 사실은 여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품게 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감상문의 후반부에 조금 더 보충하도록 하며, 먼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정리해 보자

           남자가 가상의 인물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유일한 주인공일 수 있는 여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인 여자의 과거에 그녀는, 적군인 애인을 둔 이유로 애인이 살해당하고 나서도 그 슬픔을 밖에 드러내어 보이지 못했다. 슬픔을 보이는 것 조차 죄로 여겨지던 때에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해 낼 출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슬픔의 기억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향 또한 마음속에 묻어 버리는 것을 택했다. 그 결과 그녀는 누구나 인정하는 행복한 유부녀의 삶을 살고 있다. 지하실을 나와 파리로 가는 동안 보기 좋게 자란머리처럼, 이미 본인의 머리 속에서 잘라 내어버린 과거의 기억은 스스로가 말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쉽사리 찾기 힘들다. 달라진 그녀의 삶은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로 대비되는데, 그녀가 지하실에 있을 때 유일한 친구였던 검은 고양이는 그녀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지녔지만, 영화 촬영장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흰 고양이는 그녀와 친근하게 어울린다.


여자의 과거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점은 그녀의 비정상적인 대화방식이다. 남자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등, 말의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순간순간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서 자주 분노나 슬픔을 표출한다. 또한 혼잣말과 대화의 구분이 모호하며 대화 중에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등,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서서 말을 하고있다. 이는 상호교환을 바탕에 둔 대화의 기본적인 전제를 어긴 것으로,실제 생활에서 누군가가 나와 이런 방식으로 대화 한다면 나는 상대방을 정서 불안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꼭 나와 대화할 필요가 없는, 그저 아무나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만족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의 후반부에 남자에게 돌아 갔을 때에 보이는 그녀의 행동은 주목할 만 하다. 파리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남자를 만나러 온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자신을 잡아주기만을 기대하며 정처없이 걷기만 한다.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은근히 유도하는 행동은 소위 말하는 밀고 당기기을 연상시키지만 도덕불감증이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단순히 남자를 사랑해서 히로시마에 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사를 얘기할 수있었던 사람 곁에 있고 싶어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이는 꼭 남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또한 현재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는 남자가 과거 지하실에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생각 또한 든다. 아마도 그녀는 지하실의 검은 고양이에게 그녀의 슬픔을 무조건적으로 토해내기만 했으리라,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고양이는 지금의 남자처럼, 그녀가 하는말이 무엇이든 간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남자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인물이었든, 아니면 처음에는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여자의 망상 속에만 있는 인물이었든 간에 영화의 중반부를넘어서면서부터 남자의 역할은 단순히 여자의 대화상대로 변한다. 남자가 없다면 혼잣말 이라고 생각해도좋을 정도로 기이한 여자의 독백 부분이 남자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대화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남자의역할은 커피숍에서 잘 나타난다. 그저 여자의 과거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여자의 감정이 심하게 흥분하면 뺨을 때려서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모습, 여자가 과거를 말할 때 이야기 전개보다는 그 당시 여자의느낌을 주로 묻는 모습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는 여자의 대화를 더욱 유연하게 이끌어내는 보조자 역할로서의 남자를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남자가 가상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여자의 대화법, 여자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남자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짐작 가능하다. 여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으며, 이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할 정도로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는것 조차 두려워했다. 하지만 히로시마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게 그간의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 함으로서 드디어 당신을 잊었다고 말하는 환희를 경험한다. 남자를 통해 과거의 굴레를 벗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겠지만, 오히려반대로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남자라는 형상을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남자는 그녀의 옛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을 했으며 (남자가 자고 있을 때의 손가락 움직임) 여자와 불어를 통한 말이통했고, 동시에 그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우가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사람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있는 것 처럼,(예를 들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고민을얘기하고 조언을 얻는 것) 남자는 여자에게 과거의 기억을 잊게 하는 매개체에 불과했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남자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여자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매개체는 꼭 그가 아니어도 되었으므로, 또는 실제로 존재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상상속에서 만들어냈을 것이다.

 

여자가 상상 속의 인물을 만들면서까지 잊고 싶어했던 옛 연인(느와브)는 현재 머물고 있는 남자(히로시마)로 덮어진다. 아니, 덮으려고한다. 남자에게 고해성사 하듯 자신의 과거를 내뱉은 여인은 이제 그로부터 벗어났노라, 속죄 받았노라고 말하며 고통의 기억만이 가득한 느와브 대신 히로시마를 그녀의 마음 속에 새겨 넣으려고 한다. 마지막 장면의 호텔방에서의 세수는 그녀의 정화된 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과거를 모두 정리하고 다른 인생을 살려고 하는 그녀의 앞에 다시 남자가 나타나, ‘당신은 느와브라고 말을 한다., 그녀가 느와브를 잊기 위해 만들어낸 남자가 느와브는 바로 당신이라고 말을 하는 장면을보면서, 아직은 그녀의 과거 잊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느와브는이미 그녀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녀 그 자체가 되어 버렸으므로


히로시마 내 사랑
감독 알랭 레네 (1959 / 프랑스, 일본)
출연 엠마누엘 리바, 오카다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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