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흑백 영화에 익숙해졌다
영화 초반에 잠깐 나오는 칼라 화면이 이렇게 어색할 줄이야 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글을 점점 쓸수록 이상하게 쓰는 것 같다. 어떡하니....

 

 

 

예쁜 여자로 살아 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까닭에 말도 안 되는아부 까지도 서스름 없이 하는 나의 지인들 에게만 예쁘()하다는말을 들어 온 경험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새삼스럽게 고백하자면, 나는내가 예뻐지는 것보다 예쁜 여자를 구경하는 것이 더 익숙한 대다수의 평민중의 하나다. 여자라면 누구나예뻐지기를 바라지만, 의학의 힘을 빌지 않는 이상 김태희나 송혜교 급의 미인이 되기는 힘든 평민들은통장 잔고를 늘리거나 스스로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찾아내는 것이 더 빠르고 현명한 방법이다. 내가아름다워지는 것보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홀아비마냥 도처에 널려있는 미인들의모습을 구경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인터넷 강국에 사는 덕분에 그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계 영화사 시간에 보는 영화에도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미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잉그리트 버그만, 잔 모로, 진세버그, 엠마누엘 리바는 나오는 영화마다 주연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교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화내내 펼쳐지는 그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았다. 이번 영화에도 그녀들 못지 않는 미인이 등장해서반가웠고, 다시 한번 교수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지금까지의 미인들 못지 않게 아름다운 클레오가 그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나칠 정도로 인식하고 활용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에 걸맞게 그녀의 직업은 가수, 취미는 예쁜 모자 쓰기, 현재 돈 많은 사업가와 불륜의 연애 중이며 불치병에 걸려서 얼마 못산다고 한다. 최근 트렌디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모든 조건을 갖춘 그녀는 성격마저도 변덕이 심하고 사랑 받기만을 바라는아이 같다. 길을 지나갈 때마다 쳐다보거나 말 거는 남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클레오파트라 같은 도도함과변덕스러움을 지니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나이에 걸맞지 많게 아이 같은 그녀를 철딱서니없다고 타박하기 전에 그녀의 외모에 감탄하는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추종자 중에 하나인 셈이다. 영화는여왕 같은 그녀가 암에 걸린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만약 암이라는 장치가 없다면 영화는그저 그런 클레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겁 많은 그녀는 의사의 진단결과가 나오기도전에 점쟁이를 찾아가서 병세를 물어보고, 점쟁이는 그녀가 얼마 못 살 것이라는 정보를 관객에게만 말해준다. 감독이 일부러 우리에게만 그녀의 운명을 알려준 뒤부터 영화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아니라 '5시부터7시까지의 (암에 걸린)클레오'가 되며,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더 깊게 살펴보게 된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병에 관한 생각만이 아니다.곧 죽을 것처럼 흐느끼다가도 마음에 드는 모자를 사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고, 누드모델로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며 일상을 즐긴다. 영화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클로에의 일상을 보여주는척 하면서 관객에게 몇 개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클로에가 응시하는 가면 장식품, 가면을 쓰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과 누드모델 친구, 조산아로 인해대비되는  가면나체의 이미지는영화의 주제를 아는 것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을 이해하는 데에도 이 이미지는 유용하게 쓰이므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미지이다. 등장인물들을 '가면'또는 '나체'로 구분 지었을 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빠르게알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애인에게도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항상 예쁜 모습만을 보여주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 보다 꾸미는 것에서더 큰 즐거움을 얻는 클로에는 '가면'을 대표하는 반면에, 누드모델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친구는 '나체'를 대표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른 것처럼 둘의 삶의 방식또한 극명하게 다르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훨씬 더 풍요롭게 살고 있는 클레오는 정신적인 관점에서본다면 그녀의 친구보다 더 가난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재력에 만족하기 보다는 항상 부족한점을 찾고, 쉽게 화를 내는 클레오에 비해 누드모델 일로 버는 돈에도 만족하며, 영사기사로 일하는 애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친구 쪽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 뿐일까.


클레오와 그녀의 친구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용기. 감독은 곳곳에 개구리를 먹는 사람, 꼬챙이로 자기 살을 찌르는 사람을 배치하여 용기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클레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면서 영화는 그녀에게 개구리를 먹을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의 살을찌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 이처럼 극단적인 남성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여성 택시기사는 클로에가 무의식적으로 동경하고 있는 용감한 여인을 암시한다. 지금 시대에도 흔하지 않은 여성 택시기사를 굳이 영화 속에 등장 시킨 것은 클로에와 상반되는 이미지로서의 여성상을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큰 키에 늘씬한 몸을 가진 서구적인 미인인 클로에는 사실 변덕과 투정이심한 어린아이이며, 악보 하나 제대로 볼 줄 몰라서 혼자서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반 쪽짜리 가수다. 그런 그녀와 다르게 빼앗긴 돈을 찾으러 용감하게 쫓아가는 여자 택시기사와 남들 앞에서 벗는 것을 두려워하지않는 친구는 클로에게는 없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용기는 단순히 위험을 무릅쓰거나 부끄러움을모르는 일차적인 의미의 용기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며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보다넓은 의미의 용기이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녀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용기를 동경한다. 때문에 평소 같았으면 단번에 무시해버렸을낯선 남자에게 사사로운 얘기를 털어내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나체에 대해 깊게 생각한다. 그녀가 암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있는 우리들은 클로에의 이런 생각이 그녀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오는 성장의 기회라는 것을 안다. 가면을벗고,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그녀는 결국 가질 수 있을까? 클로에의 성장여정을 따라가는 재미말고도 영화 곳곳에 보이는 음악적 효과와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카메라 기법은 감독이 우리에게 주는 덤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감독 아녜스 바르다 (1962 / 이탈리아)
출연 앙트완 부르세이예, 코린 마르샹, 미셸 르그랑, 호세 루이드 드 빌라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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