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목은 '모험'인데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바뀌었다. 대체 왜 그런건지,
제목은 '정사'지만 내가 예상하던 야한 장면은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 하긴, 60년대 영화니까 이정도 정사씬도 충분히 야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라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든다
만약 이 영화의 배경이 다른 나라였다면...글쎄,


야심한 밤, 여기는 집 근처 싸구려 호프집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조심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다가,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어김없이 나오는 주제는 남녀관계다. 가장 사적인 주제라 취기가 오른 후에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장 궁금한 것이었기에 끝까지 아껴둔 게 아닐까. 지금 애인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가장 애용되는 안주거리로 사용되는 이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어느 시인은 남녀관계를 알기만 하면 인생의 도를 통달한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우주의 삼라만상을 축소한 듯한 이 두 종족의 관계과 쉬울 리가 없다. 최근 남 녀 편이 갈려서 싸우는 일이 생겼다. 어느 방송에서 나온 말처럼, 남자들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루저'소리를 듣고, 여자는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꺾였다는 농담을 빙자한 진담을 들어야 한다. 어쩌다가 누가 자극적인 발언을 하기만 하면, 발언을 내뱉은 사람의 성별에 의해 편이 갈려서 으르렁거리는 걸 보면서 이 둘 사이에는 절대로 이해를 못하는 어떤 간격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정사는 마치 얼마 전에 종영한 사랑과 전쟁을 보는 것 같았다. 결혼할 사이라고 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는 안나-산드로, 결혼했지만 같이 살지 않는 줄리아-코라도, 부자 남편 밑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파트리지아 등 한 마디로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기 힘든 남녀들이 각자 서로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원작의 제목인 모험이 한국판 제목인 정사보다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들의 행동이 어디로 갈 지 모르는 한편의 모험 여정 같았기 때문이다.

 


클아우디아는 안나의 실종 이후에 갑자기 그녀의 애인에게 구애를 받게 된다. 절친한 친구인 안나의 애인을 만나자니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남자에 대한 의심 때문에 망설여지다가도, 순간순간 오는 쾌락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스스로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지만, 어찌 사람 감정이 물로 자르듯이 나눠질 수 있을까? 혼란스러운 그녀는 자주 거울을 보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 한다. 그녀가 혼란스러워 하는 만큼 남자 또한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곁에 있을 때에는 그토록 갈망하던 애인이 사라지자마자 3일만에 그녀의 친구에게 구애를 하더니, 그러면서도 다른 여자와의 쾌락을 즐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우연히 만난 매춘부와 시시덕거리다가도 흥이 깨진 후에 갑자기 옥상으로 올라와서는 눈물을 흘린다. 앞 뒤 안 가리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한 후에 참회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며, 적어도 눈물을 흘릴 만큼 심경이 복잡하다는 뜻이겠지만 상처받은 클라우디아를 배려하지 않은, 상당히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우디아한테 찝적대는 산드로, 얘는 여자 없으면 못사는 인간이다. 여자의 모성에 기대든지, 성적 능력에 기대든지 해야만 살 수 있는 부류의 인간>


사람에 따라서는 산드로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있지만, 클라우디아의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산드로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나 또한 클라우디아처럼 똑 부러지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 하나 다잡지 못하고 허우적댔으며, 산드로처럼 자신의 잘못을 눈물로 덮으려고 하는 비겁한 남자들을 만나 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내가 빙의된 클라우디아의 방황은 인간적인 것이고, 여자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산드로의 방황은 비겁한 변명이다.

편파적인 잣대를 가지고 두 인물의 호불호를 가리던 중에, 둘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둘 다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나중에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머리 속의 도덕관념과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한다. 사춘기 청소년처럼, 아직 도덕이나 여타 세상을 살아가는 관념이 확실히 세워지지 않는 사람과 같이 충동적으로 행동을 한다. 서로에게 해가 될 것이 뻔한 줄 알면서 귀찮게 괴롭히고, 애매한 감정을 정의내기리 위해 믿지도 않은 사랑해라는 말에 집착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남녀관계가 인생사를 축소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닐까.

아이같이 구는 건 이 둘만이 아니다. 생전 처음 보는 19살짜리 남자아이의 당신이 더 끌려요라는, 자기가 무슨 구준표라도 되는 양 내뱉은 느끼한 대사에 홀랑 넘어가버린 줄리아, 결혼한지 고작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서로에 대한 악의로 가득 한 약국 부부 등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애를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다른 사랑을 찾거나 다가오는 사랑에 혼란스러워 하며,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린다. 감독은 영화 전체에 혼란스러워 하거나, 이성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어른을 배치함으로써 남녀관계에서 이성적인 판단의 허구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다분히 자의적인 줄거리 해석을 뒤로 하고, 영화를 보는 중에 감독의 노력이 보이는 몇 가지 특징들을 잡아 보자. 영화는 혼란을 겪는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여러 암시요소를 사용해서 적절하게 표현한다. 깨진 꽃병은 안나의 불행을 암시하고, 교회의 탑은 클라우디아가 산드로의 마음에 응답하는 것을 암시한다. 이외에도 수 많은 암시요소들이 숨어 있는데, 말이나 행동으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된, 남성 여성의 대립 구도 또한 흥미롭다. 대립이라고 표현했지만 갈등이라기보다는 서로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부분으로서, 세계를 여행하고 왔다는 여자와 클라우디아에게 몰려드는 남자들과 파티장에서 혼자 서성이는 남자에게 묘한 시선을 보내는 여자들의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들의 행동은 감독이 일부러 의도했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여자를 처음 본 것처럼몰려드는 남자들과 은밀한 시선을 보내는 여자들 모두 상대방을 성적인 대상으로 인지하고 접근하려 한다. 평생을 부대끼며 살아도 언제나 새로운 존재인 남 . 다소 비 현실적으로 보이는 위의 장면들은 서로가 느끼는 낯섦을 나타내는 좋은 수단이다.

 

줄거리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세련된 요소들 덕분에 2시간 20분 정도 진행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기술도 감독의 능력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매주 사랑과 전쟁에서 보던 줄거리 보다 그것을 표현한 세련됨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진리는, 남녀관계는 어렵다는 사실


정사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1960 / 이탈리아)
출연 레아 마사리, 모니카 비티, 가브리엘르 페르제티, 에스메랄다 루스폴리
상세보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