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매력이 영화 가득 펼쳐졌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남녀 배우를 만난 게 얼마만인지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게다가 파리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듯한 배경묘사와(물론 제작비가 없어서 행인 통제를 못했겠지)
마음 가는대로 보여주는 듯한 카메라 기법(들어는 보셨나 점프컷)
여건이 좋지 않다고 해서 명작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거다


"오빠, 사람 일은 정말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 같아요. 제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일이 그렇게 빗나갈 수 있는 걸까요"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겠니, 그냥 잊어버리고, 한잔 더 마셔라"

 

    억울한 일이 있었다. 오랫동안 공들인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아서 가슴에 멍울이 졌던 기억. 답답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누구든지 붙잡고서 내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하소연하고 다녔지만 상황으로 보았을 때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덮어졌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이해하데 걸리는 시간 보다 시계의 초침이 더 빨랐던 탓에 어느새 흘러가게 되어 버렸던 그때의 기억. 지금 남아 있는 건 억울함이 아니라 그때 내가 붙잡았던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사람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류의 말을 가장 많이 들었었는데, 세상에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딱딱 들어 맞았다. 그래, 사람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지.

 

     그런데 요즘에 '생각대로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영어유치원에 들어가지 못해도, 반장을 하지 못해도, 외제차를 몰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며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라는 광고는 아마도 자유롭게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가치관 아래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던지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광고는 시대현실, 정확히 말해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반영해야만 한다. 아마도 그 광고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최근의 취업대란, 불경기로 인해 팍팍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부담 갖지 말고 마음대로 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리라. 대놓고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느끼한 말 보다는 트렌드에 맞게 담백하고 쿨 하게 포장하여.

    어느 순간부터 자유롭게 사는 것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형성되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억눌려서 살고 있다는 말도 되겠지. 길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래, 행복하기 위해서는 골치 아픈 생각 말고 내 멋 대로 살아야겠다.'

하다가 어라?

그런데 뭐야,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장담 하건 데, 반년도 못 가서 위와 같은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100%다.

 

    

    '네 멋대로 해라'의 미셸은 마치 어린아이가 행동하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무슨 수를 써서든지 가지려고 한다. 귀찮게 쫓아오는 경찰은 죽여서 없애고, 자동차나 돈은 필요할 때마다 훔치거나 뺏고, 같이 자고 싶은 여자에게 떼를 쓰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하나 둘씩 원하는 것을 채워 간다. 파트리샤와의 대화 중에도 미셸의 자유로운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데, 늙어가는 것보다 비겁함을 경계하며, 이것저것 데리고 다니는 슬픔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선택하겠다는 그의 말은 세상의 잣대에 얽매임 없이 순간의 느낌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 것이라는 선언으로 들린다. 또한, 그렇게 살고 있다는 확신으로도. 미셸이 단순한 부랑배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당당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정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언행일치의 여부만 따지고 보았을 때 미셸의 삶을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인 '네 멋대로 해라'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의 삶과 어울리는 것처럼 그는 온전히 자유를 즐겼다. 하지만 항상 생명력이 넘치며 하고 싶은 일은 전부 하고 살던 미셸의 죽음은 여러 의문점을 가진다. 왜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바로 도망가지 않고 계속 지체했던 걸까. 설마 진짜 그의 말대로 도망치는 것이 지겨워서 감옥에 가려다가 그렇게 된 것 일까. 그를 죽게 만든 것은 그냥 파트리샤의 변덕 때문 이었을까.


    최근의 트렌드대로 쿨 하게 살다가 떠나간 미셸의 삶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개별적인 행동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행동과 상황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인생까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미셸은 분명히 '제 멋대로 살았'지만 그의 삶이 '제 멋대로'되지는 않았다. 돈을 받기로 약속한 친구와의 연락은 좀처럼 되지 않고, 어렵게 훔친 자동차는 제 값을 받지 못한다. 로마로 갈 때 데려가고 싶었던 파트리샤는 오히려 자신을 고발하고, 결국에는 예기치 않게 죽음을 맞는다. 이 모든 일의 공통점은 바로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이루어 진 일이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극단적일 정도로 '제 멋대로'사는 과정에서 미셸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한다. 그에게는 그것을 제어해주는 제어장치가 없었으며, 멈춰야 할 이유 또한 알지 못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뒤에 누가 쫓아오고 있는지, 어디쯤에 함정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아무것도 없는 평원이라면 그의 질주가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달리던 곳은 도시였으며, 그 어떤 경우에도 도시에서의 질주는 허가되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미셸이 안타깝다. 물론 그가 경찰을 죽이고, 차와 돈을 훔치면서까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지만, 자유롭게 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기에 멈추지 말고 오랫동안 달려주기를 바랐다. 도망 다니는 것이 지겨워서 감옥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라면 내가 수없이 들어왔던 '사람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반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미셸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진실, 사람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 지긋지긋한 말을 확인하게 된 것 같아 답답할 따름이다. 프랑스 원 제목과 다르게 한국판의 제목은 '네 멋대로 해라'인데, 한국판 제목을 지은 사람은 '네 멋대로 살아도, 삶은 네 멋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네 멋대로 해라
감독 장 뤽 고다르 (1960 / 프랑스)
출연 진 세버그, 장-폴 벨몽도, 안드레 S. 라바테, 앙리-쟈크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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