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라이트 (Joe Wright) / 영화감독
출생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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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솔로이스트>는 조 라이트(Joe Wright) 감독의 세번째 영화다. 누군가 나에게 조 라이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를 만든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고, 아마 더 이상의 추가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70년대에 태어난 젊은 감독은 세편의 영화로 30대 후반의 나이에 벌써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세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소설이 원작이며, 원작을 크게 변형하지 않는 범위에서 많은 감독들이 어려워하던 문학의 시각화를 성공적으로 행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일컬어 한편의 시와 같다고 말한다. 언어를 물감처럼, 음표처럼 사용해서 시를 만든다는 최승호 시인의 말처럼, 시는 언어로 표현된 그림이며 동시에 음악이다. 이 공식을 그대로 조 라이트 감독에게 적용한다면 그는 영상과 음악을 이용하여 감정을 만드는 역()시작(詩作)을 하고 있다. 순서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에서 우리는 시가 주는 것과 동일한 감동을 느끼니, 그의 영화를 시로 비유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 문자로만 나타나는 문학과 시각, 청각이 모두 나타나는 영화는 큰 차이가 있다. 조 라이트 감독이 원작을 충실히 따랐다는 호평은 단순히 스토리 라인을 동일하게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설의 장면 장면이 주는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올바르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를 전달 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그의 작품을 더 깊게 바라보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의 영화에는 유난히 롱테이크 기법이 두드러진다. 그 빈도순 때문이 아니라 그 비중 때문에 그러하다. 대사나 연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장면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감독이 즐겨 쓰는 기법으로, 그의 영화를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로 기억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톤먼트>에서 보여준 5 30초간의 스테디캠 롱 샷은 영화가 어디까지 시각적 이미지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 알려주는 기념적인 시도였다. 그의 실험은 이번 작품 <솔로이스트>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데, 첼로 연주를 배경으로 뉴욕 시를 광활하게 훑는 장면, 빈민굴이나 다름 없는 슬램가를 따뜻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눈빛만으로 만 가지를 전하는 배우처럼 강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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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라이트 감독이 사용하는 롱테이크 샷은 때로는 인물의 시선에서, 때로는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시선의 방향에 상관 없이 그 둘 모두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해당 장면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이다. 감독은 퇴각 전날 밤의 해변, 난생 처음 눈앞에서 기적적인 연주를 들었을 때의 느낌, 빈민굴에서 주기도문을 듣는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기에 롱테이크 기법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롱테이크 샷을 만드는 과정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2천 여명의 엑스트라를 동원, 아침 6시부터 저녁 6 30분까지 12시간이 넘게 리허설을 진행하며 하루 만에 완성한 <어톤먼트>의 던커크 해변 장면은 모든 스탭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철저한 동선의 계산과 완벽한 리허설 뒤에 만들어지는 롱테이크 신은 그것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 것이고 그 때문에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할 수 있다. 웅장함, 경건함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수단으로 이만큼 어울리는 것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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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화를 얘기 할 때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색감의 사용이다. 초기 두 편의 영화는 영국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진행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 두 작품을 감싸 않는 색감은 빛이 내리 쬐는 가을 잔디밭의 색이었다. 갈색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노랑, 간간히 섞여 있는 초록, 붉은 노을의 빨강은 마치 필름 사진기에 빛이 들어와서 하얗게 변한 것처럼 흐릿했지만 그 때문에 더욱 따뜻하고 아련했다.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 줄거리인 덕분에 시각적 이미지는 더욱 팽창되어 스토리 전체를 아우르는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오만과 편견>의 무도회 장면과 후반부의 갈대밭 장면은 줄거리가 고조되는 순간에 관객들의 시각을 자극하는 이미지와 색감을 사용함으로써 감독이 단순히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 끝에 만들어낸 연출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솔로이스트>에서도 조 라이트의 감각은 죽지 않는다. 시골처럼 따뜻한 이미지는 많이 나타나지 않지만 등장인물에게 색을 입힘으로써 관계의 대립 구조를 보여준다. 현실과 동떨어진 음악 천재 나다니엘에게 반짝이는 조끼와 알록달록한 옷을 입히고 도시의 삶에 지닌 로페즈에게는 무채색의 옷을 입히는 것은 나다니엘과 그가 가까워 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암시한다. 관계의 화합 또한 색으로 나타내는데, 영화의 중반부에 위치한 오케스트라 장면은 장엄한 음성을 불꽃이 터지는 듯한 화려한 색으로 나타냄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나다니엘이 보는 찬란한 색에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청각의 시각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지금까지 시도하던 인물의 구도와 감정의 시각화에 정점을 찍는다.

 

조 라이트 감독의 강점은 원작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연출력과 영상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 스스로가 인물의 대사와 눈빛 만으로는 전달받기 어려웠던 그 순간의 공기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있다. 궁극적으로 관객이 작품에 직접 들어가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그의 노력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조 라이트의 시도가 어떤 결실을 맺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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