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가본 국립극장+_+
은영님의 후원으로 연극표를 얻어가지고 여의도에서 벗꽃놀이하다가 과외도 취소하고 슝슝슝~갔지요-아, 이 글을 과외하는 학생이 보면 안되는데;

은영이가 일하는 Big Issue 한글판 편집실에서 얻어다 준 초대권이라 간만에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거! 다시 한번 멋진 밤을 선물해준 은영양 고마워요~

밖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다가 5분 늦었는데 연극 공연은 영화랑 달라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원칙적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안내해주는 언니의 배려로 25분 정도에 전체 불이 꺼지는 장면에서 몰래몰래 안으로 들어갔으니! 이래저래 촌놈이 고급문화 관람한다고 고생했지 ㅠ



 리어왕은 다들 알다시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에 하나라고 한다.
세명의 딸을 가진 왕이 총애하던 두 딸에게 비참하게 버림받고, 멸시하던 막내딸에게 결정적인 구원을 받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죽게 된다. 이야기를 이루는 주요한 인물은 리어왕, 글로스터인데 둘 다 아버지의 입장이지만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주지 못하고 그들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일이 연극의 내용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고,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냥 느낌대로 쓰자면, 

 딸들의 배신으로 인한 리어의 분노

 내가 너희에게 해준 게 얼마인데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하는 식의 분노는 어찌 보면 상당히 순진한 논리가 아닐까.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참 싫지만, 나와 남의 가치나 도덕 기준이 똑같다고, 또는 똑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상처만 준다. 사람의 마음만큼 대칭을 이루기 힘든게 또 어디 있을까.

'아버지, 시종 백명은 필요없잖아요. 오십명, 아니 한명도 필요없잖아요. 저희 집으로 오시면 저의 시종들이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섬길테니 부디 고집을 꺾으세요'

'필요을 따지지 마라! 인간이 삶에 직접 필요한 것 말고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면 개, 돼지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

 그에게 필요한 것 그가 왕이었다는 증거.
 그의 삶 전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그것이었겠지. 하지만 딸들은 그 기대를 무참히 무시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말 그대로 쓸 데 없는 것이기에. 그러고보면 프라이드나 사랑같은 다분히 개인적인 가치관은 남에게 설득시키기 상당히 어려우누 개념 같다. 리어가 숨이 끊어지도록 소리를 질러도 절대로 남들은 이해 할 수 없는 상당히 개인적인 감정들

 리어의 분노는 그를 스스로 미치게 만든다. 그의 곁을 계속 지키는건 광대와, 시종 켄트 뿐이지. 미쳐버린 왕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대부분의 광인이 두려움을 주는데에 반해 리어는 상당히 이성적(?)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때문인지 계속 생각해본 결과 그가 '왕'이었기 때문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초반부를 놓쳤기 때문에 왕이었을 때의 리어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세상의 모든 왕이 그렇듯이 그는 권위적이고 그 스스로 고결했겠지. 그의 고결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지 전체적인 의상은 전부 흰색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왕위에 권력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듯 하다. 계속해서 큰딸 거너릴과 작은딸 리이건에게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왕이'었다'는 증거. 다시 말하면 자신이 왕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바라고 있는데 미친 이후에도 그의 곁에 있는 광대와 켄트로 인해 작게나마 그는 그것을 충족하고 있었던 듯 하다. 때문에 광인이 된 리어는 어린 아이가 왕 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형상화 되는데, 상당히 유치하면서도 왕역할의 기본 틀은 잃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장님이 된 글로스터가 그를 알아보자 이내 광인 흉내를 그만둔 것을 보면, 그에게 광인 흉내는 현실도피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 있는

시종 켄트와 광대, 그리고 막내 딸 코오딜리어
이 세 인물에 대한 묘사는 연극 내에서 상당히 부족하다. 원작에서는 어떨 지 몰라도 연극에서는 인물이 없이 나레이션으로 설정했어도 됐을 정도로 비중이 적었으니 말 다했지. 하지만 세 인물 모두 하나씩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리어가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왕의 보디가드 역할을 자초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늙은 켄트, 왕을 재밌게 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지만 내가 보기엔 하나도 재미 없는 광대, 왕에게 무시당했지만 도망쳐온 왕을 마지막까지 곁에서 지키는 코오딜리어.

 세 명 다 왕에게 존경보다는 연민을 가지고 있는 듯 했지.
경우에 따라서는 연민 또한 사랑이 아닐까. 자신이 자랑스러워 하던 존재가 무너졌음에도 끝까지 곁에 있고 싶어하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왕관이 없어도 그는 여전히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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