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관람한 두 번째 발레 <지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관람할 때의 무용수들은 항상 김기완 - 이은원 커플이다. 

작년 12월에 본 <백조의 호수>, 지난 달 본 <라 바야데르>(여기서 주인공은 박슬기였지만 이은원은 악녀 주연으로 비중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지젤>까지.


요즘 허리가 아파서 그런가 춤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은가 보다. 


<지젤>은 정말 멋졌다.

2011년도에 '강동아트센터'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공연하는 것을 표까지 다 사놨다가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홍콩 여행을 가는 바람에 못 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본 지젤은 그때 못본 몫까지 다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지젤>의 하이라이트는 2막이었다.

유령이 된 지젤을 무중력에서 떠 도는 것 같은 처연한 아름다움. 

그것은 백조의 호수의 그것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그냥 본능에 의해서 알브레히트의 주변을 맴도는 것 같은 지젤은 살아있을 때의 생기발랄함을 잃은 대신 완벽한 무중력, 무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이 왜 이 남자의 주변을 맴도는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슬픔을 넘어선 분노마저 보이던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사람이 연기한 주인공인데 이렇게 느낌이 다를수가 있다니. 





1. 나를 감동시킨 완벽한 예각. 

순간 눈을 깜박이지도, 숨을 쉬지도 못했다

2시간 러닝타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이 예각이 고정되던 3초 남짓이었다.




2. 발레리나, 발레리노


2-1. 이은원은 22살.

커다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이은원. 

점프 뒤 착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게 만드는 이 아름다운 발레리나는 고작 22살이다. 

<라 바야데르>에서 독사에 물려 죽어가는 연적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던 그 독한 여왕이 22살이라니 22살이라니. 


(이렇게 보면 딱 22살도 아닌 17살로도 보인다. 메이크업의 힘은 위대하구나..)


2-2. 알브레히트의 김기완은 장신이다. 

정말 의외였다. 188센티라는 키는...

어쩐지 점프할 때 힘이 남다르더라니..


2-3. 항상 눈에 띄는 이재우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그리고 이번 <지젤>까지 쭉 보면서 매번 눈에 띄는 장신의 발레리노가 있었는데, 그가 이재우(인 것 같)다. 왕 - 황금신상 - 공작 의 역할을 했는데, 주/조연 그 어느것도 아니어서 그런지 속 시원하게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그래도 다만 어디를 가도 이렇게 키가 큰 발레리노는 정말 드물테니 198센티의 이재우라고 추정해 본다. 


나는 이재우가 나올 때 마다 

'빨리 점프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재우의 점프는 남다르다.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남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고, 떠 있는 그 순간 언제 내려올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다. 시간이 정지해 있다는 표현이 이것보다 더 절묘하게 맞는 순간이 있을까. 

188센티의 김기완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점프력. 발레리노란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아쉬운건 항상 춤을 추지는 않는다는 점. 

<지젤>에서는 춤을 추지 않았다. 그냥 공작님이었음.



(순서대로 김기완, 이재우. 내가 본 지젤의 공작님이 이재우가 맞겠지? 얼굴은 맞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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