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자석

장소
아트원씨어터 1관
출연
이동하, 장승조, 송용진, 김보강, 이규형
기간
2012.11.07(수) ~ 2013.01.27(일)
가격
-


9살에 만나고, 19살에 사랑하고, 29살에 내 인생이 되었다. 

포스터만으로도 끌리는 연극은 많이 있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내가 보기를 원했던 연극은 드물다. 

네 명의 성인 남자가 서로 완전히 다른 세 분류의 나이대를 연기하는 것도 신선했고, 
극 중의 극처러 동화가 있는 것도 신선했고
남성 키스씬이 (정말 갑자기..)있는 것도 신선했지만

그래도 계속 여운을 남기는건 고든의 쓸쓸한,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과 독백이다.
"난 이제 나쁜 자석이야
이제 너에게 다가갈 수 있어."

지금 자기 모습으로는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정도의 고통이 있어야만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자석의 이야기
황금으로 만들어진 도시에 사는 왕도, 자신이 사랑하는 왕비를 죽게 한 이유가 또한 그만큼 사랑하던 황금의 무게 때문이었다.
자기 그대로 사랑받고 싶어하는건 당연한 욕망인데, 그 욕망이 또 다른 사랑을 방해한다면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9살짜리 고든을 그토록 외롭게 했던 건 복화술사인 아버지가 데리고 있던 인형이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자기의 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던 고든
인형을 몰래 훔쳐서 폐교로 들어갔던 그 날, 감정표현이라고는 거의 없는 무덤덤한 고든에게서 인형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낸 건 전혀 반대의 성격을 가진 프레이져였다. 
그 분노와 아픔이 고든과 프레이져를 계속 이어주던 끈이었는데.

프레이져와 고든
사랑인가?..
위의 물음표에는 마땅히 마침표가 없어야 한다.
연민인가 동질감인가 신뢰인가 보호본능인가 집착인가 아니면 죄책감인가
안타까움인가 그래서 남겨진그리움인가.

프레이져와 폴
영악하고 계산적인 폴
폴의 세상에는 폴만 있다.
프레이져의 세상에는 계속해서 고든이 남아 있는데

폴과 앨런
친구인가? 그게 아니라면?
계속 연락한다. 만난다. 가족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같이 지낸 시간들이 많다. 
하지만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을 말하지 않는다.
가장 순수한 앨런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앨런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자신도 그들과 같이 있을 때 행복하다고 믿는 앨런
부유한 집에서 자란 친구들이 모두 그렇듯이 세상이 실제만큼 뾰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앨런
웃지않는 고든과는 달리, 항상 웃지만 그러면서 슬퍼하는 앨런

황금도시 이야기와 자석 이야기
이 두 동화 모두 같은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지만 황금도시가 아이같은 순수함이라면, 자석 이야기는 흑백 도시의 절절함과 탁한 느낌이다. 
전작에는 아이들이 만든 것 같은 종이로 만든 소품들이 등장하고, 후작에는 무표정과 딱딱한 동작들이 나온다. 
빛과 동작과 발성의 변화만으로 이뤄내는 분위기의 전환

이런게 바로 연극의 묘미가 아닐까. 
보면 볼 수록 영화와 연극 모두, 연출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p.s. 배우 이동하 님은 지난번  [쓰릴미]에 이어서 남남 키쓰신으로 나를 놀래키셨다..

[쓰릴미]에서는 집착하고 파괴하고 소유하는 역이었는데, 지금은 뭔가..똑같이 집착과 소유와 파괴..지만 그 절절함이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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