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전4권)

저자
이영도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펴냄 | 2003-02-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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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을 처음 접한건 중학생 때였다. 
묵향이었나 가즈나이트였나 둘 중에 무엇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두 책을 같이 읽었던 것 같다. 
책상 밑에 몰래 숨겨놓고 보던 만화책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소설은 내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림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했던 판타지 소설을 밤을 새워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지금의 팬픽처럼 주인공을 그려서 올리던 팬카페는 물론 내 인터넷 브라우저의 홈 화면이었다. 

그 중에 최고를 꼽자면 나는 이영도 작가의 새 시리즈를 들고 싶다. 
멋진 양장본으로 책들을 예스 24에서 보자마자 바로 구매하기를 눌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능이 끝나고 바로 20살이 되자마자 했던 일이 판타지 소설 충동구매였다니..어지간히 현실 도피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책장을 채운
눈물을 마시는 새 4권
피를 마시는 새 8권
막 20살이 된 나의 밤을 같이 해 준 책들이다.

얼마전이었던 기나긴 설 연휴에, 각잡고 눈물을 마시는 새 시리즈를 다시 읽어 보았다. 
눈마새의 주인공은 케이건 드라카라는 남자다(피마새에는 엘시 에더리라는 남자다. 개인적으로 이 두 주인공의 성격은 매우매우*100비슷하다. 말수가 없는 것이나 자신만의 고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풍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나 무술이 뛰어난 것이나, 존경받는 성인 남자라는 점이나...판타지 소설에나 있을 법한 멋진 주인공이다)
줄거리에 대한 설명은 아래 엔하위키 미러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링크로 갈음하고, 

이제 막 20대 후반에 접어든(!) 내가 7년째 이 소설을 거듭 읽는 이유는 절대로 결말을 까먹어서 다시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책 밖을 튀어나와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것만 같은 배경 묘사 때문이다.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눈보라를 헤치고 걸어가면 레콘들의 신전인 최후의 대장간이 있을 것 같고, 
즈믄누리에서 분주히 날아다니는 딱정벌레들과 불을 가지고 장난감을 만드는 도깨비들이 있을 것 같고 
넓고 넓은 산, 어디를 가도 끝나지 않을 산줄기에는 인간들의 역사를 같이 한 하인샤 대사원이 있을 것 같고
숨이 막힐 것 같은 밀림 안 쪽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도시 하텐그라쥬에서 아직 심장을 가지고 있는 어린 남자 나가들이 몇 명의 성인 남자들을 대동하며 종종걸음을 걸을 것만 같았다. 
책을 펴는 순간 지하철과 TV와 스마트폰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시공간을 이동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판타지 세계에서 보았을 때에 위의 전자기기들도 충분히 마법같겠지만)

배경이 있다면 캐릭터도 빠질 수 없다. 
총 네 종족별로 특징이 나눠져 있는 점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그 중에서 레콘은  '새'와 같은 신체구조(부리...)를 가졌다. 레콘은 무슨 생각으로 작가가 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물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새'라니! 이 책이 '새'시리즈라서 그런건가..설마..) 종족적 특징에서 벗어나서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들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오죽하면 주인공을 주제로 그린 팬픽까지 찾아봤겠는가...

이영도의 세상을 이루는 명사들도 매력적이다.
여타 다른 소설에는 고유대명사의 명칭을 한글을 그대로 직역한 영어 단어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특히 마법 주문의 경우...너무 노골적이라 읽으면서도 오그라든다.) 이영도 시리즈는 순수 한국어를 쓰면서도 단어를 들으면 그 느낌이 바로 오는 경우가 많다. 레콘의 무기를 이루는 별철, 심장탑, 왕의 수호수 마루나래 등
난 그 작명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름을 지은 사람의 애정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매력적인 캐릭터들, 완전히 새로운 세상, 익순한듯 낯선 물건들, 음모와 술수, 배신과 기만, 정의와 고집, 신과 인간

극한의 정글부터 혹한의 극지방까지

이 모든 것들을 단지 책 4권으로 느낄 수 있다는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닌가.


전지적 작가 시점을 남용한 듯한 독심술 묘사와 마찬가지로 약간 긴 듯한 서술 묘사는 지금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 본연의 목적 - 현실을 떠난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 - 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 소설을 내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언제든 현실을 잊고 싶은 순간에 나는 이 책을 다시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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