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했던 공연인데, 그때는 멍청하게 예매 시기를 놓쳐서 못갔다. 

다시 공연을 한다길래 발레에 취미를 붙이고 재밌게 배우고 있는 후배 둘과 같이 갔다. 

이 친구들과는 대학교 때 활동했던 클래식 음악 감상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 연락 없던 내가 권하는 공연에 흔쾌히 응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아직도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같이 하자고 권하는게 참 어렵다. 

거절당할까봐 두려운 것도 이유지만, 그 사람이 차마 거절도 못하고 억지로 나와 시간을 보내는거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더 크다.

차라리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더러 든다. 


1.

'멀티플리시티'의 포스터는 굉장히 자극적이다. 모던 발레 특유의 장식 없는 복장(나체를 연상시키는)에 노란 조명 검은 그림자가 부각되어 정지된 사진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진다.

바흐는 굴렌굴드의 피아노 연주 말고는 알지 못한다. 정확히는 평균률 말고는 잘 모른다. 하나 더 하면 'G선상의 아리아'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는 것 까지는 안다. 

지나가다가 들어도 눈치 못 챌 정도지만.


2.

공연 전에 들은 설명에 의하면, 음악을 무용으로 시각화 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 고민의 흔적을 보아 비슷하거나 같은 동작이 반복되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안무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바흐를 향한 존경의 동작]이외에는 기억에 남는 동작이 없는데도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금방 흘러갔다. 

'건반이 춤을 춘다.'는 상투적인 표현밖에 쓰지 못하는 내 무지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3.

공연을 보기 전에 가장 기대했던 첼로 곡(포스터에 나와 있는 그 장면이다)에서는 첼로의 괴로워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연주자를 벗어나려고 도망 치지만 결국 연주자에게 잡혀서 현을 떨어야 하는 첼로의 몸부림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같이 본 후배는 그 동작이 외설적으로 보였다고 했다. 


4.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참 조심스럽지만, 몇몇 무용수들의 미숙한 점이 눈에 띄어서 보기 불편했다. 

특히 바흐 역을 맡은 무용수는 첼로 곡에서 유연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답답했다(물론 나보다는 유연하겠지만) 심지어 몇 번은 박자를 못 맞추고 음악에 끌려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컨디션이 그날따라 안 좋았던 것일까. 


5.

공연장은 늘 그렇듯이 훌륭했다. 심지어 B석이어도 괜찮을 정도로 시야각이 좋았다. 3층 B석에 자주 앉게 되는데, 망원경만 있으면 A석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작년에는 S, A석에 주로 앉아서 지출이 컸기 때문에 올 초에 망원경까지 사고 B석에 앉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웬걸. 공연 보러 가는날마다 망원경을 집에 두고 와서 내 망원경은 아직 한 번도 개시를 못했다. 군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만큼 좋은건데...ㅠ

대체 언제쯤 내 망원경을 챙겨 갈 수 있을까. 


6.

공연장이나 극장이나 어디서나 핸드폰을 보는 사람은 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이런걸 빛공해라고 하던가. 

공연 중에 검색을 하지를 않나 사진을 찍지를 않나 심지어는 전화까지 받았다. 

도저히 못참겠어서 1막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안내원께 주의를 해 달라고 요청헀다. 그 덕분인지 2막에서는 핸드폰을 안보더라.

공연 시간도 참지 못할 정도로 핸드폰이 소중한 사람들은 발레 공연도 핸드폰으로만 봤으면 좋겠다. 

아직 공연장 매너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확산되지 않았고 관련 법령이나 제재 조치도 없는 상황이라 애매하지만, 이런건 좀 말하지 않아도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주 뉴스를 보니 이케아 베이징 매장에서는 전시된 침대에서 수면을 취하지 말라는 경고를 부착했다는데, 

MANNER MAKETH MAN 

이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나를 감동시킨 장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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