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방 / 악마와 선한 신
국내도서
저자 : 장폴 사르트르 / 지영래역
출판 : 민음사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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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지옥은 타인들이다. - 장 폴 사르트르.

0. 
거울이 없는 방.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왜 지옥이 타인들일 수 밖에 없는지 철저하게 알게 된 연극. 

1. 
딱 세 명분의 의자가 있는 아주 작은 방.
나에게 오는 유일한 자극은 나를 제외한 두 명과 가끔씩 다가오는 이승의 현재 상황밖에 없다.
게다가 이승과의 연결도 곧 끊겨 버리고, 남는건 이승에서의 괴로운 기억과 나를 보는 두 쌍의 시선들. 
왜 가르센이 자신을 그렇게 이해받고 싶었는지는 충분히 공감하지 못헀지만, 그의 고통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나는 비겁자가 아니야. 
"나에게 제발 비겁자가 아니라고 말해줘. 난 사내다운 사내가 되는 것에, 용기 있는 일을 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단 말이야."
단 두 명 이라고 해도 그들은 군중이었고, 군중 중 한 명인 에스텔은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한다. 
"당신이 비겁자라고 해도 난 당신을 사랑해요. 이게 더 대단하지 않나요?" 
이네즈는 가르센을 완전히 이해하기 때문에 그를 완벽한 비겁자라고 생각한다. 
"당신도 스스로가 비겁자라고 생각하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이네즈에게 이해받지 위해서 가르센은 문이 열렸을 때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가 인정하는 이해는 이네즈에게서만 얻을 수 있을 테니까. 

2. 
전문 연극인이 아닌 학생들이 연극을 한다는 그 차제만으로도 칭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칭찬이라는 말 자체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한다는 뉘앙스가 있어서 대놓고 칭찬하기가 애매하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다 자기 생각이 있는 완전한 성인인데, 내가 이들을 아랫사람으로 볼 이유는 없지. 
칭찬이 아니라 존경을 담아서 말하자면, 약 한 시간 반동안 대사를 잊지 않고 극의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나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난 요 근래 한 시간 반동안 뭔가에 집중하거나 몰입했던 기억이 없다.
심지어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건 진짜 본받아야 한다.

3. 
"나는 플로렌스를 조종했어. 그녀의 속으로 들어가서 그녀가 나의 눈으로 그를 보도록 만들었지"
이네즈는 잔인한 여자다. 이네즈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플로렌스가 이네즈의 옆어서 평안히 잠들 수 있얼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밤중에 문득 일어나서 가스 밸브를 연거다. 연인의 자살(물론 자기도 같이 죽었지만 어쨌든)을 눈 앞에서 보고서도 방에 들어오는 순간 플로렌스를 찾는 뻔뻔함은 또 뭔가...그리고 첫 눈에 엘레나에게 반해서 추파를 던지다니 이런 상도의도 없는...물론 이건 그녀의 냉정하고 이성적인 상황판단 능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녀가 아는 것처럼 이미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람. 

4. 
벌레처럼 발가벗겨지다. 
이건 그들이 살인을 고백했을 때가 아니라 서로가 욕망하는 것을 여실히 들러냈을 때가 아닐까.
누구도 자신의 욕망을 남 앞에 이렇게 환하게 드러내지 않으니까. 
아니, 그 전에 욕망하는게 뭔지 잘 모르지 않나?

내가 누구인가를 묻기 전에 누구이고 싶은가를 먼저 물어라. 
삶은 그냥 거져 얻어지는게 아니라고 믿었던 어떤 피곤한 아저씨(사르트르)의 말이 생각난다. 

5. 
공연 팜플렛 뒤에 빼곡하게 있는 후원사의 목록을 보면서, 동생이 이 가게를 하나하나 다 찾아갔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온전히 발로 얻은 성과라서 더 의미가 있는 거겠지?
마냥 어린애처럼 보였는데 이젠 자기가 좋은거, 싫은것도 다 말할 줄 알고 , 점점 자기를 더 잘 알게 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6. 
KTX입석은 진짜 힘들다. 
고작 한 시간 걸리는 대전인데도 힘들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선 기차는 서서가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등을 기댈 곳도 없고 손을 잡을 곳도 없다. 그냥 전차 통로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있는거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러면서 할인은 고작 10%정도만 해준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내가 왜 2만원 주고 서서왔지...하는 생각이 든다. 50%는 할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7. 

동생이 연극을 해서 다행이다.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를 오감으로 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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