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는 여행중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이미나
출판 : 걷는나무 201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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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카테고리가 너무 안쓰러워서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엇다.
아니 이러면 진짜 내가 책 안 읽는 사람 같잖아??!!! 나 책 읽는 사람이라구!!! 독후감을 안 쓸 뿐이지...
도서관 반납일까지 하루 미루면서까지 후기를 남기는 첫 번째 책.


<내 여자친구는 여행중>
 

 

이상하게 여행을 가기 전에 손에 들려 있덕 책에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는데, 막상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까 그런 책을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여행 다녀왔다고 위세 떠는 아니라, 어떤 책을 읽던지 나의 그것과 자꾸 비교하게 되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 여행 서적에서 속삭거리는 익사이팅하고 어머이징한 들을 당연히 나는 겪지 못했거덩.  나는 적당한 정도로 평범하고 적당한 정도로 특별한 그런 여행을 했다. 특별한 일들은 내가 한국에 살았을 때보다 조금 빈도수가 높았을 뿐인데, 다른 사람의 여행기에서는 뭔놈의 사건사고가 그렇게 많이들 일어나는지.

 

각설하고, 와중에서도 책이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가 도중에 끝나버린 느낌이 있어서 조금 아쉽지만, 가슴이 느끼기만 했던 것들을 책은 글로 풀어준다.

 

', 맞아 나도 그랬었지'하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 너무너무 많다.

비행기를 탄다고 지금 그렇게 신나 있지만 아마 당신도 내가 보고 싶을 거에요.

 

기내식도 먹고 자고 일어났는데
아직 도착시간까지 5시간이나 남아 있을

가방을 끌며 숙소를 찾아가는데

해는 벌써 버리고 배는 고프고 다리는 아프고

후드티를 입은 불량스러운 남자들이

곤니치와 니하오마 남의 나라 말로 ㅜ작을 걸어올

힘들게 찾아간 박물관에 생각보다 별로 없을

메뉴판 사진을 보고 10유로짜리 음식을 주문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시킨 것은 34유로일

새벽에 문득 잠을 깼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를 같을

무거운 생수를 들고 숙소로 돌아오다가 문득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을

 

잊지 말아요 언제든 전화해도 된다는

벌써 지겨워졌냐고 놀리지도 않을 거란

아무 때나 돌아와도 된다는 걸….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이라도 나는 건 아니겠지?
메모리 카드가 잘못되서 사진이 다 날아가면 어떡하지? 하긴, 휴대폰이 있으니까.
아, 나 만화책은 확실히 반납하게 맞지? 갔다 왔더니 연체료만 몇 만원 나오면 큰일인데. 아냐, 분명히 반납했어.
혹시 모르니까 동생한테 문자라도 해야곘다. 참 거기 서머타임이 언제까지더라. 설마 비행기 놓치는 일은 없겠지?

그래, 걱정하지 말자. 다 괜찮을 거야. 무조건 다 잘될거야.

돌아서서 입국 신사대로 가다 말고 멈칫한다. 그 아가씨 사진도 찍을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이번 여행지에서 만난 첫 번째 친절이었는데. 하지만 곧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은 날 테니까. 그리고 흐릿한 기억 속에서 떠올릴 그 얼굴을 수증기 가득한 화장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예쁠 테니까.

그러고 보면 인사법 자체가 다정하고 다정하지 않고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 지금 마사이족 청년이 반갑다고 내 얼굴에 침을 뱉거나 이뉴잇 아주머니가 반갑다며 내 뺨을 두 대 친다면 많이 무서울 거야. 하지만 곧 익숙해지겠지. 그런 후엔 나도 엄청난 반가움을 담아 침을 뱉고 뺨을 때릴 수 있을 테고 말이야. 다른 사람이 나처럼 인사를 해 준다는 것, 그것은 같은 언어를 쓰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통하게 해 주는 것 같아.

만약 이게 영화였다면 나는 집시풍의 치마를 입고 긴 머리카락을 무심하게 고무줄로 묶은 여자였을 거야. 안토니오는 키가 크고 검은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멋진 남자였을 거고, 우리는 사랑에 빠졌겠지. 영화였더라면 말이야. 하지만 현실은 달랐고 우리는 기차가 도착하자 서로 다른 칸에 올라 헤어졌어. 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만으로도 참 꿈같이 좋았어. 아마 나는 그 두 사람과 그 노랫소리를 잊지 못할 서야.
 
무심히 흐르고 있는 그 많은 시간 중에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길지 않은 시간을 나누는 것, 서운한 마음과 힘찬 포옹 한 번으로 영영 헤어지지만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을 마음에 남기는 것, 어쩌면 여행은 그런 것인지도,

행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한 번은 괜찮지만 두 번은 좀 그런데. 나쁜 사람이 아닌 건 알겠지만 좀 부담스러운데. 거절하면 너무 미안한 건가. 아까 괜히 따라 나섰나. 앞으로도 며칠 더 더블린에 있을 텐데 또 마주치면 어색해지는거 아닌가, 그 카페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이제 거기도 못 가는 건가.

그러고보니 나쁜 꿈처럼 기억이 돌아온다. 과거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잘츠부르크에 갔을 때였다. 미국에서 온 목소리 큰 홀리 - 버스에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참피해서 그만 뛰어내리고 싶었더랬다 - 와 하루를 같이 다녔는데 그날은 정말이지 길고 힘들었다. 그래서 단단히 결심했다. 함부로 같이 다니자는 말은 하지 말자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생각날 구절들.
인용구에서 짐각이 가겠지만 주인공은 무려 10일짜리 휴가를 던지고 여행을 갔지만 성격은 전혀 대범하지 않다.
소심하고, 낯선 사람을 만날 때는 약간의 계산도 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속상해한다.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바가지를 왕창 뒤집에 써도 그럴수도 있지 뭐. 하면서 넘어가고, 수십의 삐끼 앞에서도 의연하며, 낯선 사람을 만나면 오바마 대통령 저리 가라는 듯한 미소를 뿜으면서 5분만에 친해지는 여행자들의 여행기만 만나다가 (적어도 그들은 도미토리 문을 열면서 '웃는 연습'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없이 솔직한 마음을 만나니 반갑기까지 했다.

다시 내가 여행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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