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와 버질
국내도서>소설
저자 : 얀 마텔(Yann Martel) / 강주헌역
출판 : 작가정신 201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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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작가의 유명한 출세작 [파이 이야기]에서다. 동물원 사장 아들인 인도인 소년이 난파를 당하게 되어 뱅갈 호랑이 한 마리와 둘이서 태평양을 떠다닌다는 이야기 때문에 책을 집어 들었지만, 요즘 다 본 책을 되파는 일에 전념하는 내가 [파이 이야기]를 책장에 꽂아 두고 싶게 만드는 것은 그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파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 개의 종교를 믿는 아이다. [파이 이야기]초반에는 소년이 어떻게 종교적으로 잡식을 하는지를 보여주며 그의 종교관을 말 해 준다. 이 떡밥은 후에 소년이 태평양을 떠다니는 신세가 되었을 때 빛을 발하게 되는데, 그 누구든지 뱅갈 호랑이와 단 둘이 24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생각 했을 때는 신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소년 또한 그가 믿는 세 명의 신을 모두 생각하며 공포를 억누르고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려고 한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종교관이 후에 있을 줄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작가가 책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 책을 사게 만든 것은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 지에 대한 궁금증이지만, 책을 팔지 않게 만든 것은 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작가의 방식이다.

 

얀 마텔을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따라서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핵을 포장하여 독자들을 유혹한 다음 그들에게 이야기 한다.

봐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거야

 

이번 [베아트리스와 버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은홀로코스트’, 즉 나치의 유대인 대 학살이다.

 

작가인 주인공은, 그것도 꽤 성공한 작가인 주인공은 몇 년을 준비해서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을 출판하려고 계획한다. 책의 출판을 의논하기 위해 출판사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진 그날. 그의 책을 처참히 난도질 당한다.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책은 출판 되지 못한다. 출판에 대한 의욕을 잃은 동시에 글을 쓸 동기 또한 잃어버린 그는 생활환경을 바꾸기 위해 캐나다로 떠나고, 그 곳에서 평범한 삶은 산다. 성공한 작가의 휴식기가 그렇듯이 가끔씩 그에게 날아오는 독자들의 팬레터를 읽는 것 외에는 그가 작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평온한 일상.

 

그런 그의 일상에 한 통의 편지가 날아온다.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헨리라는 이름의박제사는 마치 모든 것이 예정되었던 듯이 그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고, 심심한 헨리는 충동적으로 그의 가게에 방문을 한다.

 

이 책은 사실 엄청난 반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스테리한 박제사 노인이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주인공 헨리를 자극할 때 마다 독자는 헨리와 마찬가지로 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인 무엇인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그냥 평범한? 미치광이 노인네인가?’

대체 왜 이런 희극을 쓰는 거지?’
따라서 책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노인의 정체는 비밀로 하고
, 책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는 [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의 특징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말을 하고 싶다.

 

첫째, 주인공의 직업

[파이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작가이다. 하지만 [파이 이야기] 주인공은 자신이 인터뷰하는파이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책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파이에 대한 감사의 글은

이 책이 혹시라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해 준다.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에서 사실성은 굉장한 힘을 가진다. 따라서 주인공이 작가라는 것은 마치 얀 마텔 본인이 자신의 경험담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에서 주인공과 얀 마텔은 더 높은 싱크로를 보인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인 동시에 국적 또한 비슷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작가 봐라, 자기 얘기를 남이 겪은 이야기인양 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둘째, 동물의 등장

우리 나라에도 동물을 주 소재로 사용하는 작가들은 많이 있다. 순간 생각나는 분이박민규. 기린 아버지 라던가 개복치 모양의 지구가 등장하는 [카스테라]는 독자에게

왜 기린이지? 왜 개복치지?

하는 궁금함을 준다. 하지만 작가의 대답은.

그냥. 그냥 동물이면 좋을 것 같아서

 

[베아트리스와 버질]에는 당나귀와 원숭이가 등장한다. 물론 이 두 동물이 박제사에게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이들을 선택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다른 동물 중에 멸종 위기에 처한 어떤 동물이라도 고를 수 있을 텐데. 책 속에서 박제사 헨리는 말한다.

 


사람들은 동물에 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메사추세스에 사는 보안관에는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메사추세스에 사는 보안관 원숭이에는 편견을 가질 수가 없어요. 동물은 편견을 지우며 현상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셋째, 언어에 대한 관심

작가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서 어릴 때부터 불어, 영어, 스페인어에 노출되어 왔다. 다국어에 노출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언어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작 [셀프]에서도 주인공의 유아기에 등장하는 다국어에 대한 그의 관심은 [베아트리스와 버질]에도 이어진다. 또한 이것은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헨리는 젊었을 때 배웠지만 그때까지 묻어 두었던 지식을 활용하려고 스페인어 강좌에도 등록했다
. 헨리의 모국어는 프랑스어였지만, 외국 공관을 돌아다니는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린 덕분에 영어와 독일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뭐든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학습기간에 스페인어만은 그의 외에 완벽하게 스며들지 못했다. (중략) 영어가 재즈라면 독일어는 클래식이었고 프랑스어는 교회음악이었으며 스페인어는 거리의 음악이었다. (31, 32)



넷째, 묘사의 힘

내가 얀 마텔을 좋아하는 이유중의 한다. 설령 장님에게라도 완벽하게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묘사 능력은 작가가 마땅히 가져야 할 능력인 동시에 무척 어려운 능력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작가는 대놓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맨 처음 박제사 헨리의 가게에 들러서 원숭이버질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버질은 아주 크지도 않고 아주 작지도 않은 아담한 개처럼 남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 얼굴도 잘생긴 편이고요. 주둥이가 짧고, 적갈색을 띤 눈동자는 반짝거리잖습니까? 까만 귀도 적당하게 작고, 까만 얼굴도 깨끗합니다. 물론 완전히 까만색은 아닙니다. 연푸른 기운을 띤 검은색이라고 할까요? 풍성한 턱수염도 상당히 우아해 보입니다. (중략) 부드럽고 굵으면서도 광택이 나는 털입니다. 등은 붉은 벽돌색이지만, 얼굴과 팔다리는 밤색 계통에 더 가깝습니다. 내가 꼼짝하지 않고 땅바닥에 누운 채로, 버질이 햇살을 받으며 나무에 기어 올라가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다니며 움직이는 걸 보면, 구리가 녹아 흐르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지극히 단순한 몸짓까지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쳐다보기가 아찔할 겁니다. (103, 106)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오기 전, 보스턴에서 산 원서를 읽는 것을 한층 어렵게 만든 것은 이 표현력 때문이다.

 

세 달이 지나도록 반 조금 더 밖에 읽지 못한 원서를 측은하게 생각 했는지, 생각보다 한국어 번역판이 빨리 나와서 무척 반가웠다. 물론 번역하는 과정에서 변형은 필연적인 것이지만 책을 읽은 후에 느낀 감정은 변함이 없다.

 

엄청난 반전을 지니고 있는 작품. 지금도 결말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250쪽 밖에 하지 않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 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보스턴에서 산 원서는 20달러고, 우리나라에서 파는 똑 같은 원서는 왜 9000원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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