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국내도서
저자 : 유인경
출판 : 위즈덤경향 2014.03.03
상세보기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난 순간, 도무지 어떻게 해야 정답인지 알 길이 없는 직장 생활에 답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사는 방법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던 대학생 시절, 학교로 오시는 명사들의 강연을 쫒아 다니며, 가능한 그들과 접촉하고 연락하려고 발악하던 그 시절. 

나는 그 사람들 눈에는 의욕 넘치는 대학생이었고, 그들은 나에게 답을 줄 수 있는 현인같은 존재였다. 

그 때 같은 감정을 다시 느꼈기 때문인지, 고백하건데 나는 어리(석)게도 이 책을 제대로 읽어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양성평등 시대라고는 하지만 언젠가 들었던 라디오에서처럼 여성이 임원이 될 확률은 10만분의 1이다.

팀장님이 나를 따로 술자리에 부르는 이유가 업무 연관성이 아니라 혹은 다른 이유가 아닐까 고민해야만 한다.

50여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한 세미나 중간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마치 내 전용 화장실처럼 쓰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낀다.

회식 자리에 따라가서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점심을 먹으면서 미팅을 하자는 나의 제안에 '여자들은 점심 시간이 사교의 장이잖아요'라는 헛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대관령 꼭대기에 있는 것 같은 내 기분을 남들은 알까.

중심을 잃어 버리면 넘어질까 봐 태어나서 한 번도 의식 해 본적 없는 한 발 내딛기를 온 힘을 다해 해야 한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꺼풀이 감기면서 지치고, 문득 소리내어 울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때린다.


세상을 더 먼저 살았던 선배들은 뭔가 비밀을 알 수 있을 지도 몰라. 

여기서 버틸 수 있는 비밀을.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힌다. 

책 자체가 문어체로 쓰였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 놀라운건 이미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터득했던 점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상사가 나를 혼낼 때는 나라는 인간을 혼내는 것이 아니라 내 업무를 혼내는 거다.'

'회사에서 애교는 무능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람들과 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것과 그들에게 귀여운 여자애로 인식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드라마를 보고 울어도 사무실에서는 울지 말아라'


남들이 보기에는 딱딱하다고 평가하는 내 회사 생활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한테 부드럽고 여성스럽기를 바라는 그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스러움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딱딱함과 철저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분명 다른 바구니에 담아 있는 것 같다. 

전자로 애정과 부드러운 관계 그리고 연민(난 아직 어리니까요?)을 얻을 수 있다면 후자로는 업무 평가와 역량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계속 고민 중이고, 매번 회의에 들어가거나 손님들을 맞을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넣어야 한다. 

'나는 지금 돈버는 중이야'


책은 이것 말고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말 해 준다. 


'원하는게 있으면 요구하고, 요구할 것'

'겸손해 보이기 위해 약점을 발설하지 마라'

'때론 뻔뻔한 자랑질도 필요하다'(난 자랑할 게 없는데요? 라고 해도 사내 평가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라'


뻔뻔해지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내 일 다 해놓고 퇴근하면서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순간에는 언제가 조마조마하고

PC를 끄기 전에 내가 혹시 놓친 것이 있는지, 내일 출근을 무섭게 만드는 일들이 아직 남이 있는지 고민하고

매년 말에 이뤄지는 평가 시즌에는 1년 동안 내가 이룬 일이 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야 하니

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난 아직도 내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 완료된 상반기 업무 평가에서는 몇몇 분들이 고맙게도

책임감이 있고 자기 일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를 해 주셨지만

글쎄…

아직 더 부족한 건 아닐까. 이 문장을 쓰는 지금에도 칭찬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열심히 하라는 충고로 들리는 건 왜일까


마지막으로

'감사하라'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이 딱 두 가지가 있는데, 건강과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받기만 하고 살아왔는지.

그럼에도 나는 23살 전까지는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던 사람이 아니었고 지금도 여전히 버르장머리가 없다. 

회사에는 어쩜 죽어도 고마움을 느끼기 힘든 사람이 많은지


이건 내 인격이 아직 여물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책을 읽었는데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걸 보니 인격이 덜 여문것은 물론 이해력도 모자라나 보다. 

대체 답은 어디에 있는거야


원래가 삶에 답이 없는 것처럼 삶의 일부인 직장 생활에도 답은 없는 걸까.

내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직장 '언니'가 이렇게나 절실하게 필요한데.

대체 언제쯤 그녀를 만날 수 있는걸까.









+ Recent posts